[방송]강수연 "요부라기보단 멋진 여자…난정역에 갈수록 애착"

  • 입력 2001년 7월 9일 18시 50분


“민속촌(‘여인천하’ 촬영 장소)에 소풍 온 유치원생들이 저를 보면 ‘난정아∼’하고 부르면서 쫓아와요. 그때가 가장 기뻐요. 제가 다양한 계층에 친숙한 이미지를 갖게 됐다는 뜻이니까요.”

SBS 월화드라마 ‘여인천하’의 주인공 정난정 역을 맡은 강수연(35). 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지난 1월 이 드라마에 출연하게 됐을 때 ‘며칠 동안 밤잠을 못 이뤘다’던 팽팽한 긴장감은 찾을 수 없다. 강수연에게 이 드라마는 16년만의 TV 출연이다.

‘여인천하’(42.6%)는 지난주 AC닐슨의 시청률 조사 결과 ‘태조왕건’(42.3%)을 제치고 처음으로 주간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여인천하’가 인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데는 강수연의 연기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1주일 중 6일을 정난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벌써 6개월이 넘었어요. 전 꿈속에서도 ‘난정’으로 사는 걸요.”

당초 50회로 예정됐던 ‘여인천하’는 이번 주 46회를 방영한다. 예정대로라면 문정왕후가 숨을 거두고 윤원형 정난정 부부가 파국으로 몰려가야 할 시점인데 극중에서 난정의 활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연말까지만 버텨보겠다’며 강수연이 농담을 건네자 곁에 있던 김재형 PD가 “무슨 소리야 140회까지는 가야지”라며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정난정은 중종 인종 명종 대까지 3대에 걸쳐 심정 김안로 윤임 등 수많은 권신들을 물리치고 윤원형을 권력의 핵심에 앉힌 뒤 조선시대 관비출신으론 유일무이하게 정경부인의 자리에 오른다.

“난정 역은 연기를 하면 할수록 멋진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자의 신분상승이 막혀 있는 시대에 그런 일을 이뤄냈다는 것은 미모와 행운 뿐 아니라 두뇌와 노력이 함께 따라야 가능했던 일이 아니겠어요.”

강수연의 난정에 대한 ‘애정’은 난정이 윤원형의 본처인 김씨는 물론, 명종의 형인 인종을 독살한 것까지 합리화할 정도였다.

“우리 역사에서 남자들이 권력 투쟁에 승리하기 위해 저질렀던 살육에 비하면 오히려 자비로운 것인지 몰라요. 태종 이방원을 보세요.”

그는 정난정을 ‘요녀’내지 ‘악녀’로 바라보는 데는 남성 중심의 시각이 깔려 있다고 비판한다.

“요녀라고 하지만 난정은 평생 남자라곤 윤원형 한 사람만 받들고 살았어요. 남편을 영의정까지 출세시키고 시누이에게 수렴청정의 절대권력을 쥐어 주었지요. 요즘 시각으로 본다면 이보다 훌륭한 와이프가 어디 있겠어요?”

마침 ‘와이프’ 이야기가 나와서 강수연에게 결혼계획에 대해 물었다.

“저는 솔직히 결혼생활과 연기 둘 다 잘 할 자신이 없어요. 둘 다 모두 잘 할 수 있는 그런 때가 오면 결혼하겠지요.”

그래서 그 모두를 잘 하는 동료 탤런트 전인화가 너무 부럽단다.

남편 대신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것은 ‘콩쥐’란 이름의 두 살 박이 애완견. 촬영장에도 늘 데리고 다니는 콩쥐는 크고 멍청한 눈을 지닌 암캐(쉬츠)다. 평생 한번도 강아지를 떼 놓고 살아본 적이 없다는 그녀에게도 ‘콩쥐’는 특별한 존재다. “너무 멍청한데다 나 아니면 살 수 없을 것처럼 무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아직 제목을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다음에 찍을 멜로 영화를 정해두었다는 그녀에게 앞으로 어떤 연기자로 남고 싶으냐고 물었다.

“선배 연기자 가운데 누구처럼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누구처럼 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아요. 그저 제게 맡겨진 역할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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