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5월 16일 18시 59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지난 7∼11일 5부작으로 방송된 <인간극장-김희라의 고백>(KBS2·밤 8시50분)은 시종 ‘극적’인 톤을 늦추지 않았다. 당뇨와 중풍으로 초췌해진 몰골, 허름한 여관방에서 시든 화초처럼 구겨져 있는 화려한 전직 배우의 모습.
제작진이 들어온걸 아는지 모르는지 잠을 자고 있는 그에게, 그의 알량한 도시락 통에, 훤히 벗겨진 뒷 머리에, 또 눈물 범벅인 그의 얼굴에, 카메라는 사정없이 렌즈를 들이댔다.
드라마도 아니고, 중년의 사내가 엄마 아빠를 부르며 줄줄 눈물 흘리는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분명 <인간극장>은 극적이었다.
그러나 극 치고는 복선이 약했다. 한 인간의 일그러진 모습에 치중하다보니 ‘왜’ ’어떻게 하다’ 그런 결과에 이르렀는지 설명이 부족했다.
고생은 했다지만 말끔한 차림으로 미국에서 귀국한 부인, 가수로 데뷔한 막내 아들, 그들과 담쌓고 서울의 한 구석에서 시름시름 앓고있는 왕년의 명배우는 분명 잘 어울리지 않는 세 폭의 그림이었다. 그 걸 연결시키는 것이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들의 역량일 것이다.
카메라의 앵글은 다르지만, 결과를 지나치게 부각해 사실감이 떨어진 건 <성공시대-동양생명 상무 김영주>(MBC·13일 밤 10시35분)도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제시한 성공의 기준이라는 것이 너무 즉물적이라 거부감이 있는데다가, 내가 김영주라도 낯뜨거울 만큼 미화 일변도였다. 성취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이건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예 신화를 쓰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사람도 아니야, 사람도….”라는 한 사원의 말이 제작진의 그런 시각을 드러낸다. 게다가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그녀” “오지랖 넓은 영주” “억척스런 보험 아줌마” “아줌마의 힘” 같은 표현들은 그의 성공이야기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여성을 비하하는 말처럼 들려 거북했다.
나레이터가 시종 “영주” “영주”라고 이름을 부른 것도 이상했고, 신문도 아닌데 이름 옆에 괄호 열고 꼭 54세라는 자막을 넣는 것도 불필요한 친절이었다.
미국의 교양 오락 전문 케이블인 ‘A&E’ 의 ‘바이오그래피’는 현존하는 각계 인사들은 물론, 잔다르크, 모세, 마르키 드 사드, 카사노바같은 기록 속 인물들도 되살려내 사람의 이야기로 구성해 낸다. 자료사진을 쓸 망정, 대역은 잘 쓰지 않는다. 세기와 공간을 뛰어넘어 그들의 이야기엔 인간의 체취가 있고, 감동과 교훈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눈높이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앵글로 담백하게 사람이야기를 전하는 순수 바이오그래피 프로그램 하나쯤, 이제 나올 때가 되었다.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shpark1@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