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김갑수, 반갑수!', 시인 김갑수가 만난 배우 김갑수

  • 입력 2001년 4월 3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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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어디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지 근자에 들어 ‘갑수’들의 활약이 왕성하다. 문화계, 경제계, 심지어 파렴치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그중의 대표선수는 아마도 ‘종간’ 김갑수가 아닐까 싶다.

1984년 연극 <님의 침묵>에서 만해 한용운역을 맡아 대 호평을 받은 이후 영화 <태백산맥> <지독한 사랑>을 통해 연기파의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최근 KBS1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의 충직한 책사 종간역으로 화제선상에 있는 연극인 김갑수는 일련의 ‘갑수군(群)’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언젠가는 그를 만나게 되려니 생각했다. 나 또한 느낌부터 된장찌개 냄새와 머슴 이미지를 퐁퐁 풍기는 ‘갑수’의 일원으로서 그의 활약을 주목해 왔던 터였다.

주로 라디오를 중심으로 방송일이 많아지고부터는 연기자 김갑수와 다른 김갑수라는 점을 알리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 아예 새 프로를 시작하게 되면 “저는 영화배우 김갑수가 아닌 ‘조촐한’ 김갑수입니다”를 고정 첫 멘트로 삼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띨띨’한 PD는 내게 보낼 출연료 25만원을 그의 계좌로 입금시킨 일조차 있었으니 이거 원…. 억울해서라도 칵 유명해져 버릴까나.

며칠전 동아일보의 ‘김갑식’ 기자가 비실비실 웃음을 흘리며 그를 만나보라고 전화했다. 갑식은 갑수와 버금딸림이로되 머슴 느낌은 더 윗길이다. 원고 청탁을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그렇게 실실거리기도 처음이다. 왜 아니랴. 문화판 ‘3갑(甲)’의 회동이라니.

갑남(甲男)들의 첫 만남은 만우절날인 1일 오후 대학로도 홍대앞도 아닌, 분위기도 어울리게 서울 길음동 산동네 꼬불꼬불한 골목 귀퉁이의 연극 연습실에서 이뤄졌다.

그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극단 ‘배우세상’의 세 번째 공연 ‘칼 맨’을 준비하느라 한창 분주했다.

이 연극에서 ‘대표 갑수’가 대형 배우치고는 의외로 단역인 장씨역을 맡고 있어 내력을 물어보니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란다. 역시! 갑에는 꼴갑도 있고 육갑도 있지만 역시 그중 제일은 인간 김갑수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그의 진중한 음성, 사려깊어 보이는 눈매 그리고 절제된 몸동작 속에서 평소 그려왔던 이미지의 실체를 알고 싶었다.

2시간여 동안 서로 줄담배를 피워가며 인생살이를 이야기했다. 사람들을 잘 만나는 편이 아니라는 것, 무척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대중 앞에 나서는 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 심지어 고달프게 자랐던 어린시절의 기억까지 일치되는 점이 너무 많아서 놀랍기도 했다. 그중 나의 관심은 ‘유명한 배우’ 이전의 상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 있는 한 중년 사내의 속마음이었다.

그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도대체 그에게서는 꾸며지거나 갈고 닦은 면모, 또는 ‘야술가(예술가)’기질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 길음동 골목길 어디에서라도 마주칠 수 있는 아저씨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 결정적인 차이라면 그에게는 연극, 연극이 모든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화제도 종국에는 연극 얘기로 이어졌다. 그러니 영화나 TV 드라마를 통해 이른바 ‘뜨고’ 나서도 달라질 게 도통없는 그였다.

그의 연기인생은 그리 순조롭지 않았다. 그가 표현하는 이른바 7, 8년 주기는 아프게 들린다. 77년 극단 ‘현대극장’의 연기생으로 입문한 이래 84년이 되어서야 제대로 배우 대접을 받게 되고, 곧장 침체기에 빠졌다가 91년 ‘길 떠나는 가족’의 이중섭역으로 겨우 만회를 했단다.

번번이 7, 8년씩 걸려서 몸을 세워 온 지둔한 역정이 그를 ‘진중하고 내면적인 연기자’로 단련시킨 거였다. 과연 우리에게 연기력과 깊이를 겸비한 중년 연기자가 몇이나 있었던가.

대화 말미에 ‘코 막히게’ 웃겼던 일 한 토막. 다들 어린 시절 ‘갑돌이’ 놀림에 시달렸던 터라 세련된 이름에 한이 맺힌다. 동석한 김기자는 아이 이름을 ‘김산’이라고 지었단다.

내 아이도 멋스럽게 ‘김율’이라고 지었다. 배우 김갑수의 아이 이름은 ‘김’(신고가 되지 않아 ‘아리’가 됐다)이란다. 우하하.

김갑수(시인)





김갑수 기자가 본 '투 갑수'


“김갑숩니다.”

“….”(웃음)

하늘 아래 같은 이름으로 40년 넘게 살면서도 처음 악수를 나눈 ‘투(Two) 갑수’의 표정은 이심전심이란 단어가 제격이었다. 그 웃음에는 이제서야 만났다는, 밀린 숙제를 한 듯한 묘한 감정이 깔려 있었다.

연극 ‘칼 맨’(김태수 작, 윤우영 연출)에 함께 출연하는 탤런트이자 영화배우인 조재현은 “허, 김갑수가 김갑수를 만납니까”라며 노골적으로 선배들을 놀려댔다.

이 작품은 서울 변두리 정육점을 배경으로 정육점 주인 두철(조상건)과 자폐증에 걸린 그의 딸 영애(이금주), 과거가 베일에 싸인 과격파 병태(조재현) 등을 중심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담았다. 현실의 칼과, 마음 속의 칼이 코믹하면서도 따뜻하게 교차된다.

나이는 배우인 ‘종간’ 갑수(45)가 시인 갑수(44)보다 한 살 위였다.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갑수는 책 음악 방송에 묻혀 살았다. ‘종간’ 갑수는 연기의 한 우물을 팠다.

다른 인생이다. 하지만 이름이 같다는 인연의 힘은 첫 만남의 서먹서먹한 공기를 금새 날려보냈다.

소시적 경험부터 중년의 고민까지 빠르게 질문과 대답이 오갔다. ‘갑수’들은 대학로에서 ‘칼 맨’ 공연을 본 뒤 2차 회동을 하기로 했다.

공연은 5일부터 7월1일까지 평일 오후 7시반, 주말 오후 4시 7시. 1만5000원. 02―987―4829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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