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뜨는 드라마 뒤엔 '좋은' 악역이 있다

  • 입력 2000년 12월 7일 14시 45분


"악역이 떠야 시청률이 오른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에서 통용되는 새로운 경향이다.

'블록 버스터 드라마'라는 MBC <황금시대>와 맞붙어 예상외로 초반 상승세를 계속하고 있는 SBS 수목 드라마 <여자만세>. 채시라 채림 등 화려한 명성의 스타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이 드라마에서 시청자의 '눈길'을 가장 많이 받는 스타는 난희 역의 박소현이다.

극중에서 그녀는 채시라(다영 분)의 오랜 연인 변우민(정석 분)을 가로채 결혼한 이후 남편의 옛 여자를 회사에서 내쫓는 독한 여자이다. 남편의 뜻은 눈꼽 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매사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남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는 공주병 환자인데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한 인물이다.

평소 전문 MC와 라디오 DJ로 활약하며 밝고 정감있는 이미지를 쌓아온 박소현으로서는 파격적인 변신. 하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역할을 맡은 그녀의 '활약' 덕분에 <여자만세>는 요즘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만약 제가 맡은 난희가 적당히 귀여운 면도 있고, 때론 동정도 가는 그런 성격이라면 오히려 재미가 없을거에요. 지금처럼 철저히 못된 성격인 것이 저로서도 연기할 맛이 나요."

박소현은 착하고 귀여운 역을 맡았을 때보다 오히려 지금 사람들이 더 알아본다며 "좋은 악역은 연기할 맛이 난다"고 예찬론을 펼쳤다.

10%대의 부진한 시청률을 떨치고 요즘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는 MBC <아줌마>도 시청자의 손가락질을 받는 '악역'이 돋보인 경우. 극중에서 조강지처인 원미경을 버리고 한눈을 파는 철없는 남편 강석우와 아내 몰래 후배와 외도를 하는 이병세는 여성 시청자들의 관심을 드라마에 고정시킨 일등공신.

둘 다 바람기를 주체못하는 대책없는 '남편'들이지만, 성격은 조금 다르다. 강석우가 자신의 능력이나 상황은 생각하지 못하고 먼저 일부터 저지르고 나서 후회를 하는 정상참작이 되는 불쌍한 '악역'이라면, 불륜 행각까지 철저한 계산 하에 저지르는 이병세는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는 인물.

"다음에는 또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몰라 지켜보게 된다"는 어느 시청자의 말처럼 둘의 활약은 극중 주인공인 원미경과 심혜진의 역을 살리면서 드라마의 갈등과 사건을 증폭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종반을 향해 치닫는 SBS 주말극 <덕이> 역시 시청자의 욕을 도맡아 먹던 강성연과 박영규의 '호연'이 없다면 평균 3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이밖에 내년까지 연장 방영을 하는 KBS 1TV 일일극 <좋은걸 어떻해>도 정선경과 정보석의 사랑을 훼방놓는 홍학표의 활약 덕분에 초반 부진에서 탈피해 시청률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재미있는 성격의 '악역'이 드라마의 재미와 반전을 더해준다고 해도 시청자가 공감할만한 연기력으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있을때 빛을 발하는 법.

그런 점에서 <아줌마>의 강석우와 <덕이>의 박영규는 풍부한 연기경험을 바탕으로 개성 넘친 악역 전문으로 이미지를 변신해 인기를 얻고 있다. 멜로물의 주인공만 도맡아 하던 강석우는 최근 들어 <학교>에서 꽉 막히고 권위적인 학생주임, <내일을 향해 쏴라>의 비열한 음반제작자,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의 깡패 두목 등 개성있는 악역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국희>에서 김혜수의 일생을 가로막는 못된 인물로 원성을 산 박영규도 <덕이>에서 비슷한 성격의 '악역'을 맡아 성격파 연기자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시청자의 원성을 한 몸에 받으면서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좋은 '악역'의 확보. 요즘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들이 높은 시청률 위해 갖추어야할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김재범 <동아닷컴 기자>oldfie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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