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KBS1 '이것이 인생이다', 나훈아 모창 '나운하'의 인생

  • 입력 2000년 10월 2일 19시 21분


자신의 본명을 감추고 평생 다른 사람 흉내를 내며 살아가야하는 ‘그림자 인생’이 영화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KBS 1TV ‘이것이 인생이다’(3일 오후 7·35)는 대중문화의 번성 뒤에 자리잡은 그런 그림자 인생의 애환을 담았다.

국내에서 모창가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손꼽히는 가수 나훈아의 이미테이션가수 ‘나운하’로 27년을 살아온 박승창씨(45).

경남 산청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화가를 꿈꿨던 박씨가 나훈아 흉내를 내기 시작한 것은 고교시절부터. 화구를 살 돈이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학예회때 부른 나훈아의 ‘녹슬은 기차길’이 반응이 좋았던 것에 용기를 얻어 극장 쇼무대의 문을 두드린 것.

이때부터 화가에서 가수로 인생진로를 바꾼 그는 음반을 취입한답시고 집안 전재산이던 논 일곱마지기의 절반을 날렸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홧병을 앓다 돌아가셨다.

그래도 가수에 대한 오기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부인과 3남매를 남겨둔 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볼품없는 외모 때문에 업소 출연을 번번이 거절당하고 집으로 돌아갈 면목이 없어 서울역 앞에서 노숙자로 지내기를 3년여. 어느날 어린이가 버리고간 풋사과를 씻어 먹다가 화장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고 마지막으로 도전한 것이 90년 SBS에서 개최한 나훈아 모창대회였다.

못먹고 못자 노래 연습실에서 수차례나 쓰러지는 등 눈물겨운 노력끝에 ‘제스처상’을 받았다. 비로소 밤무대 길이 열렸고 지금은 수많은 나훈아 모창가수 중에서 첫손가락에 꼽히게 됐다.

그는 지금도 나훈아의 국내외 공연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수십여개 비치하고 단순한 모창뿐만 아니라 나훈아의 동작과 말투, 버릇까지 철저하게 연구한다.

제작진은 그의 젊은 시절 사진과 지금의 외모를 비교해 보고는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했는지 실제 외모까지 나훈아를 닮아가는 ‘진화’에 성공했다”고 감탄했다.

이제는 3층짜리 연립주택을 마련할 만큼 생활도 안정됐지만 그에겐 아직도 한이 남아있다.

바로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으로 살지 못하고 남의 이름으로 살고있다는 죄책감이다. 프로그램 말미 그가 아버지 묘소 앞에서 자신의 본명을 찾고싶어하는 심정을 토로하는 장면은 인생의 아이러니를 가슴 찡하게 보여준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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