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 두 文化]시드니, 예술가가 되련다

  • 입력 2000년 8월 27일 18시 31분


김형찬〓디지털 생명인 시드니는 학습과 기억을 통해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단순한 학습이 아니라 예술 창작 같은 창의적인 일들도 할 수가 있을까요?

윤송이〓창작은 학습이나 기억과 달라서 컴퓨터로 구현하기가 대단히 힘들어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김〓디지털 생명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게도 창의적 작업은 가장 어려운 일에 속하지요. 그 때문인지 예술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창의적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특별히 존중을 받지요.

윤〓예술 창작은 물질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사람들에게 별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데도, 어느 사회에서나 장려돼 왔고 사람들 스스로도 대단히 하고 싶어해요. 역사상에서 그렇게 지속돼 왔다는 것은 예술 창작이 인류의 진화 발전에 도움이 돼 왔기 때문일 거예요.

김〓실제로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은 일상적 인식과 달라요. 일상적으로 사물을 인식할 때는 자신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에 주목하지요. 거리에서 나무 한 그루를 볼 때도 나무 그 자체보다는 시원한 그늘이나 산소의 공급처 또는 재목 등 나무의 기능성을 중심으로 인식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은 기능이 아닌 사물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예요. 마찬가지로 아름다움을 만드는 예술 창작도 실용적 필요성에 따른 작업과는 다른 차원의 작업이죠. 그림을 그리려 할 때 나무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능으로서의 나무를 바라볼 때와 전혀 다르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비실용적 예술 행위가 진화 발전에 직접적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윤〓일상적인 행위는 그 동안 학습하고 기억한 것을 바탕으로 그것을 실제 생활에 활용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창의적인 작업은 현재의 평범한 삶으로부터 비롯되는 일종의 ‘비약’이예요. 비약은 평범한 생활로부터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계기를 만들죠.

김〓그 동안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그 때까지 배워온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군요.

윤〓기존에 배운 것만 반복해서는 빠른 발전을 이룰 수 없죠. 기존의 지식을 가지고 단순히 ‘이용(exploitation)’할 수도 있고 그것을 가지고 새로운 곳에 적용하면서 ‘모험(exploration)’을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차이는 대단히 커요. 예컨대 A라는 길로 다니는 것만 배운 개가 평생토록 그 길로만 다닌다면 안전하기는 하겠지만 별다른 진화 발전은 못 하겠죠. 하지만 배우지 않았던 B나 C라는 길로 간다면 위험은 크더라도 새로운 발전의 여지가 많을 거예요.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일상의 반복적 생활에서 벗어나 일종의 창의적 작업을 하는 것이죠. 이것은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 하는 성향과도 연관이 돼요. ‘이용’과 ‘모험’의 성향을 어떤 비율로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진보적 또는 보수적 성향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죠.

김〓너무 진화론적으로만 설명하려는 것은 아닌가요? 예술 창작의 욕구 자체에 주목하면 어떨까요? 인류의 조상이 그렸다는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는 자기가 잡고 싶은 동물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던데, 그렇게 현실에서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상으로 구현해 내서 소유하려는 데도 예술 창작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현실에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지만 그것을 현실에서 만족시키도록 만들기는 어려우니까 그림 음악 조각 등으로 자신의 이상을 구현해 보는 것이지요. 게다가 그런 창작과 성취의 즐거움도 크니까 사람들이 예술 창작을 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즐거움 같은 것 말예요.

윤〓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는 아이디어와 용기가 필요해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 창의적인 작업은 사회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지만 그것이 기존 사회의 흐름이나 구성원들의 공감대 또는 집권자의 생각과 다를 때 거부되고, 심할 경우는 탄압을 받게 되죠.

김〓예술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는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데서도 큰 즐거움을 느끼는데, 감상도 진화에 도움이 될까요?

윤〓예술에도 아주 실질적 기능이 있어요. 우선 음악은 시간 개념을 배워 나가는 도구죠. 길고 짧은 선율의 반복을 통해 시간 개념을 배워 나가요. 마치 어린 아이가 블록을 쌓으면서 공간 개념을 배우는 것과 같아요. 그림과 조각을 통해서도 공간 개념을 배우죠. 또한 예술 작품이 주는 감동도 인성 발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해요. 아주 어렸을 때는 완전히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을 하다가 두 살쯤 되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돼요. 이것을 ‘마음에 대한 이해(theory of mind)’라고 하는데 자폐증 환자의 경우는 이런 마음을 갖지 못해요. 예술 작품이 주는 감동의 경험을 통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죠. 예술은 ‘모험’의 도구인 동시에, 의사소통의 규약(protocol)을 익히는 기능을 하는 것이죠.

김〓예술에 감정의 정화라든가 선전선동과 같은 기능 외에도 진화와 사회화를 위한 실질적 교육효과가 있다면, 시드니뿐 아니라 인간들의 진화를 위해서도 예술 감상과 창작의 교육이 중요하겠군요.

<김형찬·윤송이 공동정리>

■이용(exploitation)과 모험(exploration)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적용하는 두 가지 방식. ‘이용’은 기존 지식이나 경험을 그대로 또는 약간의 변형을 가해서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고, ‘모험’은 기존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다. ‘모험’을 할 경우 성공할 기회는 적고 위험성은 크지만 단순히 ‘이용’하는 데 비해 빠른 진화 발전의 계기를 잡을 가능성이 커진다.

■마음에 대한 이해(theory of mind)

인성 발달의 특정 단계에서 갖게 되는 것으로 대상의 마음(mind) 상태에 대한 관심과 의식을 가리킨다. 예컨대 ‘내가 때렸으니 아플 것이다’, ‘내가 쓰다듬어줬으니 좋아할 것이다’ 등 타인과의 관계에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마음을 대상화해서 바라볼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갓난아이가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타자의 마음을 이해하며 일종의 ‘사회도덕성(social moral)’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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