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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8월 14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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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KBS ‘일요스페셜’을 통해 소개된 ‘숨결’은 진실의 힘이 얼마나 숨가쁘게 다가올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 작품이었다. 95년 ‘낮은 목소리’, 97년 ‘낮은 목소리 2’로 종군위안부 문제에 천작해 온 변영주 감독의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편인 이 작품은 분 단위로 채널을 바꾸는 요즘 시청자들의 시선을 확 잡아끌기에는 역부족이었을지 모른다.
감정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악 하나 흘러나오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라고는 70대를 넘어선 할머니들 뿐이다. 그나마 발음도 정확하지 않고 삐뚤빼뚤한 글씨는 대부분 맞춤법이 지켜지지 않았다. 화려한 배경음악과 어여쁜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프라임타임 드라마를 제껴두고 종군위안부라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주제에 채널을 고정시키기는 힘들다. 하지만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이 차근차근 털어놓는 고백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 얼마나 어설픈 것인지를 인두로 지지듯 확인시켜준다.
부끄럼 때문에 61년간이나 고향을 찾지 못했던 김분선할머니는 군인으로 다시 태어나서라도 이땅을 지키고 싶다며 말을 못 이었다. 언니와 나물캐다 끌려가 칼로 난자당하는 고초를 격은 심달연할머니는 가족과 고향에 대한 기억조차 잃어버린 채 지금도 남녀가 팔짱을 끼고 가는 것만 봐도 소름이 끼친단다.
그리고 13세에 집 앞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다 중국 하얼빈에 끌려가 매독에 걸린 김윤심할머니는 그 어린 시절 혹독한 고통이 평생을 거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나를 여실히 증언했다. 광복 3개월 앞두고 탈출했지만 집안에 발도 못들이고 16세에 억지시집을 가야했고 어렵게 난 딸이 자신 때문에 벙어리가 됐다는 말을 듣고 딸만 안고 서울로 도망쳐 살아야했다. 지금은 40대 주부가 된 딸이 수화로 어머니의 감춰뒀던 진실을 털어놓는 장면에서는 그때의 만행이 아직도 진행 중임을 깨칠 수 있었다.
담당 오진산PD는 “시청률은 평소에 비해 절반 가량으로 낮았지만 인터넷사이트에 뜬 시청소감은 두배로 늘 정도로 집중도가 높았다”고 ‘숨결’의 뚝배기같은 저력을 확인해 줬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