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카리스마 보컬'의 마지막 현역 권인하

  • 입력 2000년 7월 10일 18시 53분


“권인하(41)는 8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던 ‘카리스마 보컬’의 마지막 현역이다(음악평론가 강헌).”

80년대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룹 ‘들국화’ 김현식 권인하 등의 보컬에는 카리스마와 혼이 짙게 담겨 있었다. 그러다가 90년대 들어와 남성 가수들의 목소리가 ‘거세’되기 시작했고 요즘에는 아예 여성같은 목소리가 인기를 끈다. 여성성이 부각되는 세태 때문지만 권인하는 “어쨌든 가수의 보컬에는 혼이 느껴져야 한다”고 고집한다.

최근에 내놓은 5집 ‘너에게’는 예전의 권인하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호소력 짙은 거친 고음과 슬픔의 극단까지 밀어 부치는 힘 등. 달라진 게 있다면 수록곡 13곡중 부드러운 느낌의 발라드를 몇 곡 포함시켰다는 점.

권인하의 설명.

“하도 따라부르기 어렵다고 해서요. 쉽게 부를 수 있는 노래도 넣었어요.”

‘비오는 날의 수채화’‘갈테면 가라지’ 등 그의 히트곡은 노래방이나 술자리에서 ‘카수’로 손꼽히는 이들만 부른다. 권인하의 보컬을 흉내내기가 어렵기 때문.

이번 5집은 사실은 여섯 번 째 음반이다. 그러나 그는 5집이라는데 한치의 양보가 없다. 5년 전 발표했던 5집 ‘내안의 너’를 자기 음반사에서 삭제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음반 발표 직후 타이틀곡이 표절 의혹이 짙다며 음반을 회수해버렸다.

이같은 일은 음악에 대한 그의 자존심과 철학을 드러내주는 것이다.

일화 하나.

91년초 그는 KBS2의 ‘가요 톱 10’ 녹화 도중 마이크를 던졌다. 남북고위급회담에 참가했던 북측 대표단이 관람하러 온다는 이유로 리허설을 다섯번이나 되풀이한데다 노래 도중 마이크가 꺼졌는데도 연출진이 가수들에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은데 대한 항의표시였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방송사가 가수들 위에 군림하던 시절인지라 동료 가수들도 그의 행동에 대해 “저게 미쳤구만”이라며 혀만 찰 뿐었다.

이젠 마흔이 넘은 나이.

10대의 ‘끼’와 외모, 기계로 꾸민 가성(假聲)이 넘치는 가요계에 그의 자리가 예전만큼 넓을 것 같지 않다. 방송사에서도 가수의 나이대로 노래의 나이를 메기려 한다. “내가 아무리 40대이지만 음반도 그렇게 만들었겠냐”고 대꾸하는 것도 화난다.

8일 밤에는 음반을 기획중인 ‘들국화’의 전인권과 밤늦게까지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했다. 권인하는 그 자리에서 “혼자 내니까 정말 힘드는데 80년대 가수들이 한꺼번에 음반을 내 바람을 일으켜보자”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아들 오범(10)이 가수 지망생이 아닌 게 가장 서운하다.

“아들한테 ‘얌마! 가수는 정말 멋있는 직업이야’라고 꼬시는데 영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허엽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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