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영화제]'잃어버린 가치' 다룬 작품 호평

  • 입력 2000년 2월 17일 19시 40분


‘유럽에서 가장 큰 공사장’. 독일 베를린 중심부의 포츠담 광장은 고층 빌딩 신축을 위한 타워크레인이 즐비하게 서 있고 굴착 굉음이 끊이지 않는 살풍경한 시가지이다. 11년전 동서를 가르던 베를린 장벽의 잔해가 남아 있는 길 한쪽에는 첨단 하이테크 도시의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는 조감도가 붙어 있다. 과거와 미래의 어중간한 시점에 처해 있는 포츠담 광장. 베를린 영화제가 올해 50회를 맞아 이곳에서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 것도 어찌보면 아이러니다. 반세기의 역사를 누적해온 이 영화제는 새 천년을 맞은 지금 과거와 미래, 어느 쪽을 응시하고 있는 걸까.

세계 3대 국제영화제중 올해 처음 문을 연 베를린 영화제. 개막 1주일이 지난 16일(현지시간)현재까지 비교적 호평을 받은 영화들중에는 지나간 시절과 잃어버린 가치, 역사적 주제를 다룬 작품이 많다.

중국 장이모우감독의 멜로 영화 ‘로드 홈(Road Home)’은 1957년으로 돌아가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중국인들이 잃어버린 가치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하고 순정적이지만 소박한 진실의 힘이 배어 있는 이 영화는 서양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일본 오가타 아키라감독의 ‘소년합창단’은 혁명의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70년대초를 배경으로 음악과 정치, 말더듬이 소년과 빈소년 합창단원이 꿈인 미성(美聲)의 소년을 대비시키며 꿈을 빼앗긴 자의 비극적 삶을 그린 수작. 순수한 소년의 깊은 상처를 통해 전후 일본의 뒤틀린 얼굴을 보여준다.

또 80년대부터 독일 통일 직후까지를 배경으로 좌파 테러리스트의 도피생활을 통해 건물 재건축처럼 쉽게 변모할 수 없는 독일인들의 아픔을 그린 폴커 슐렌도르프감독의 ‘리타의 전설’도 주목받고 있는 영화다.

비 할리우드 영화들이 과거를 바라보는 베를린의 시선을 담고 있다면, 경쟁 부문 출품작 21편중 6편에 이르는 할리우드 영화의 스타 파워, 베를린을 휩쓸고 지난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열풍은 거대해진 베를린이 담고 싶어하는 미래의 모습처럼 비쳐졌다. 할리우드 영화중에서는 현재까지 가족 관계의 균열과 상처로 일그러진 인간군상을 그린 ‘매그놀리아’, 프랑스 영화 ‘태양은 가득히’를 리메이크한 ‘리플리’가 호평을 받고 있다.

한편 영화제와 동시에 열리는 ‘유러피안 필름 마켓’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30여편의 한국 영화 세일즈를 맡은 미로비전 채희승대표는 “‘여고괴담-그 두 번째 이야기’는 반응이 좋아 시사회를 한번 더 열었고 ‘쉬리’ ‘텔미 썸딩’에 대한 바이어들의 문의도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16일 ‘쉬리’의 시사회에는 100여명의 외국 바이어들이 참석, 높은 관심을 보였다.

<베를린〓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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