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MBC 월화극 '마지막 전쟁'증후군 확산

  • 입력 1999년 8월 17일 18시 25분


“너 맏며느리 아니야? 맏며느리가 돼서 도대체 뭐 했냐구?” 모처럼 남편이 기를 편다. 그러나 돌아오는 아내의 반격. “그게 무슨 감투 씌워준 걸로 아나 봐? 내가 무슨 죄져서 그 집안 맏며느리도 들어갔냐구!”

‘잘 나가는’ 변호사 아내 지수(심혜진 분)와 ‘빌빌거리는’ 남편 태경(강남길 분)의 팽팽한 신경전, MBC TV 월화드라마 ‘마지막 전쟁’이 주부들 사이에 폭발적 화제다. 지난달 12일 첫 방송때 시청률은 15%정도(미디어서비스코리아 조사)였지만 이후 30대 주부팬들의 호응으로 급상승, 8월 들어 28%대의 높은 시청률을 올리고 있다.

인기의 열쇠는 ‘보통’ 가정과는 달리 남편을 한손에 꽉 쥐고 흔드는 30대 아내의 당차고 유능한 모습. 반면 무능력한 남편은 아내에게 무시당하며 주눅들어 살아간다.

96년엔 MBC드라마 ‘애인’이 기혼남녀의 사랑을 수채화처럼 서정적으로 그려내 ‘애인 신드롬’이라는 용어까지 낳았다. 99년말의 ‘마지막 전쟁’은 이제까지 TV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부부상’을 크레파스화처럼 원색적으로 드러내며 주부들에게 속시원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고 있는 것.

맞벌이 주부인 김현미씨(34)는 “처음엔 지수가 너무 남편 기를 죽이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이젠 할말 다하는 걸 보면 속이 후련하고 통쾌하다”고 말했다.

특히 주부들은 지수의 삶을 ‘내 현실’과 비교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한편 자기 삶을 돌아보기도 한다. MBC 인터넷홈페이지(www.mbc.co.kr)엔 “지수는 좋겠다. 남편이 착해서” “나는 소위 잘 나가는 남편과 사는데 한마디로 장미빛은 아니다. 지수같이 살아보고 싶다”는 시청소감이 끊이지 않는다.

뜻하지 않았던 주부들의 환호에 미혼의 드라마작가 박예랑씨(29)도 놀랐다. “여자들이 얼마나 맺힌 게 많았던지 너무 재미있어 하는 거예요. 아직도 우리 드라마에서 남자는 권위적이고 여자는 눈물만 흘리면서 말 한 마디 못하니까요.”

일본의 시사주간 ‘세계주보’최근호는 “정보화 시대로 들어서면서 여성의 지위 향상과 함께 애정관계 사회 생활 등 각분야에서 남성의 발언권이 크게 약화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고 전했다. 드라마 ‘마지막 전쟁’은 이같은 변화를 감지해 보여주는 안테나 역할을 하고 있는 셈.

페미니스트저널 ‘if’의 박미라편집장은 “여자가 무조건 삭이고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불만을 뿜어내고 싸우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반가워한다.

그러나 “극중 지수도 시어머니에게는 약자”라며 “목소리가 높다고 해서 여성 지위까지 높아진 것은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경은기자〉ke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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