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때부터 록음악에 심취해 나이가 들어서도 클럽밴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들을 총망라해 소개하는 잡지가 창간된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종휘씨 등이 민맥출판사의 도움을 받아 펴내는 「팬진 공」. 팬은 음악팬을, 진은 매거진을, 공은 구르는 공, 텅빈 공(空)을 의미한다.
이 잡지는 2일 첫호를 발간하면서 표지에 「폐간호」임을 밝혀 화제가 되고 있다. 오버그라운드(공중파 방송) 스타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얼마든지 책으로 만들어 주면서 언더그라운드(록카페)에서 록음악에 대한 열정을 태우고 있는 밴드들의 삶을 소개하는데는 인색한 우리 출판문화에 대한 성토의 뜻이 담겨 있다. 「팬진 공」의 편집진은 『언더그라운드 록밴드들의 활약상과 열정이 충분히 전달됐다고 생각하면 새출발한다는 의미에서 「창간호」를 내고 폐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팬진 공」 폐(창)간호에서 소개하는 클럽밴드들의 이름을 살펴보면 이들이 얼마나 엉뚱하면서도 도전적인 발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내 귀에 도청장치」 「새마을운동」 「기타로 쏜다」 「정약용 프로젝트」 「허벅지 밴드」 「노 브레인」 등이다.
「내 귀에 도청장치」는 한 방송사의 9시 뉴스시간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한 광인을 떠올리며 지었다. 「허벅지밴드」는 드럼스틱을 허벅지에 두드리며 연습하다 나온 이름, 「새마을운동」은 새마을운동 시대의 복고적인 사운드에 관심이 많다. 「정약용프로젝트」는 정약용을 존경하는 멤버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항간에 떠도는 「정말 약오르지 용용」의 약자라는 설은 사실이 아니라는 게 멤버들의 설명.
이들은 자유분방한 이름들처럼 자기 음악도 어디에 얽매이길 싫어한다. 「이런 음반으론 안 팔리니 댄스나 발라드를 만들어 보라」고 충고하는 음반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십대 밴드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밴드활동을 하듯이 이들도 대부분 대학원생, 엔지니어 증권회사직원 등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음반 판매망을 벗어난 「독립 음반」을 만들어 록 본래의 정신이 살아 있는 음악을 팬들에게 전하려 한다.
「팬진 공」은 이들의 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는 주무대인 신촌 홍익대의 록카페들도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