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현장]「그는 나에게 지타를…」표정 한 컷에 구슬땀

입력 1996-11-27 20:03수정 2009-09-27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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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朴元在기자」 작가 하일지씨의 장편소설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고 물었다」. 상처받은 남녀의 파행적인 사랑과 죽음을 냉정한 필치로 그린 이 작품이 충무로 한귀퉁이에서 소문없이 영화로 꾸며지고 있다. 포스트 모던 멜로를 표방하는 「그는 나에게…」의 주인공은 젊은 시절 실연의 아픔을 안고 이국 땅에서 살아온 중년남자 수(김갑수). 20년만에 귀국한 수가 과거의 연인이자 지금의 형수인 혜숙(이응경)과의 엇갈린 인연에 괴로워하다 호텔 여종업원 난희(양정지)와 광기서린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영화의 골격을 이룬다.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는 수의 조카 동준(김정현)은 작은 아버지와 여자 친구의 정사장면을 목격한 뒤 러시아로 훌쩍 떠난다. 극중 배역들이 이처럼 쓰라린 기억에 괴로워하는 인물로 묘사된 탓에 영화 분위기도 음울한 톤이 지배하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제주서귀포시법환동 법환포구. 늦가을 바닷바람이 제법 쌀쌀한 가운데 「그는 나에게…」의 촬영이 단촐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촬영분은 수가 바닷가를 산책하다 배위에서 풍어제를 지내는 무당과 눈길이 마주치는 장면. 대사 한마디없이 화면의 이미지만으로 수의 불길한 운명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4t 남짓한 고깃배 갑판에 제상이 차려지고 일당 2백만원에 고용된 전문 무당패가 촬영 준비를 마쳤다. 구성주 감독은 50대 무당이 굿하는 장면에서 번번이 NG를 내자 『얼굴은 김지미 뺨치는데 연기는 왜 제대로 안 되느냐』고 농담을 섞어가며 아마추어 배우들을 독려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날의 유일한 출연배우 김갑수는 『표정만으로 연기하는 것도 제법 재미있다』며 틈틈이 서귀포 바닷가 경치를 감상하는 여유를 보였다. 촬영장에는 제주도에 집필실을 차린 작가 하씨가 들러 스태프를 격려하고 원작자로서 자신의 작품해석을 제작진에게 열심히 전달했다. 「경마장 가는길」의 조감독 출신인 구감독은 『이 영화의 특징은 전체 분량의 절반 가량을 등장인물의 표정과 자연 풍경만으로 소화해내는 점』이라며 『나무 돌 풀 꽃과 같은 자연물의 감정을 영상으로 표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체 촬영의 85%를 제주도 로케이션으로 찍은 「그는 나에게…」는 내년 1월 중순경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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