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조 지역발전 투자 관건은
文정부 상생형 일자리도 흐지부지… 기업에 투자처 결정 자율권 주고
수도권에선 할수 없는 첨단산업… 지방서 할수 있도록 규제 풀어야
삼성, SK, 현대차, LG 등 10대 그룹이 4일 이재명 대통령과의 기업 간담회 이후 5년간 270조 원을 지방에 투자하겠다고 밝히며 지역 경제 활성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균형 발전’을 위한 지방 경제 활성화 정책은 이미 역대 여러 정부에서 추진했지만 흐지부지된 경험이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의 ‘지방 주도 성장’이 이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투자처를 기업 자율로 결정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파격적인 규제 혁신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대기업-지역 매칭에 상생형 일자리도 흐지부지
박근혜 정부는 전국 17개 시도마다 기업을 하나씩 배정해 지역별 특화 산업을 육성하고 벤처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창조경제혁신센터’ 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현대차가 광주에서 막걸리 업체를 지원하는 등 지역 산업 생태계 조성 취지에 맞지 않는 상황이 나타났다. 기업 본업과 관련 없이 정부가 기계적으로 지역과 기업을 매칭하는 방식이 결과적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보다 ‘일시적 사회공헌’ 효과만 냈다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상생형 지역 일자리’도 정부가 정한 지역에 기업이 투자하는 식으로 운영되다 동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광주, 부산, 대구 등 전국 8곳에서 기업과 지자체가 ‘노사민정 협약’을 맺는 경우 보조금을 주는 상생형 일자리 정책을 시행했다. 초기 ‘1호’ 사업지였던 광주에서는 현대차가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를 생산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 공장을 운영하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추진한 부산, 군산 등에서는 사업 중도 포기 결과가 나왔다.
기업이나 기관을 무작정 지방으로 이전시킬 경우에는 역효과가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노무현 정부 당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을 제정해 부산, 대구, 광주 등 10개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을 이전시킨 사례다. 당시 공공기관 종사자들이나 공무원들만 지방에 가고 가족들은 서울에 남는 형식적인 이전이 줄을 이었다. 교육, 의료, 문화 등 인프라 없는 강제 지방 이전의 한계로 꼽힌다.
● AI, 로봇 등 지방에서는 ‘규제 프리존’ 필요
기업들은 이재명 정부의 지방 활성화 정책이 성공하려면 ‘기업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이 때문에 이번 지방투자 발표가 민간 주도로, 필요한 사업 투자로 조성되는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민관 협력이 지나치게 정부 중심으로 치우쳐 기업들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수준이 되면 또다시 실패 사례만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업들이 각 지방에서 ‘사업 하고 싶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에서는 할 수 없던 사업을 지방에서는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 주자는 것이다. 현재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로봇 등 첨단 산업들은 여러 규제로 인해 국내에서 제대로 사업을 추진하기 힘들다. 기업들이 이런 산업을 지방에서 추진할 경우 ‘규제 프리존’을 만들고 다양한 시도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아예 하지 말라는 것 빼고 다 하라는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4일 간담회에서 “재정 배분이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서울에서 거리가 먼 지역을 가중해 지원하는 ‘가중 지원 제도’를 법제화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 지원에 규제 해소까지 포함되어야 지방 투자가 실효성을 가질 것이란 것이 경제계 전망이다.
한편 일각에선 지방에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주자는 목소리도 있다. 기존의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현행 25% 법인세 체계를 지역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등 혁신적인 지원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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