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살리기,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이 답이다 [특별기고/김동섭]

  • 동아일보

중기 24시/김동섭 ㈜컴윈스 회장

대한민국 제조업의 핵심인 뿌리산업이 위기에 직면했다.
김동섭 ㈜컴윈스 회장
김동섭 ㈜컴윈스 회장
최저임금 급등과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관행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제조업 기반을 흔들고 있다. 특히 금형, 주조, 소성가공 등 뿌리산업은 인건비 부담 증가로 해외 이전이 가속화되고 중국산 저가 제품 유입으로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제조 강국의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현장에서 커지고 있다.

1976년 설립 이후 49년간 한 우물을 파온 경험에서 볼 때, 국내 뿌리산업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 제조업의 기초 산업인 뿌리 분야가 현재 직면한 구조적 문제들은 산업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최저임금 급등이 가장 큰 충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건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기업들이 베트남, 중국 등 해외로 속속 이전하면서 국내 제조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술 유출 우려다.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통해 중국이 한국의 기술을 습득해 빠르게 따라잡고 있으며 일부 분야에서는 이미 추월당한 상황이다.

국내에 남은 기업들의 처지도 녹록지 않다. 생산성 저하와 인력 고령화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값싼 중국산 제품을 이용하려는 움직임까지 더해지며 금형산업 등 뿌리 분야 중소기업들이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인건비와 물가 상승이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악순환의 굴레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일부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제조 경쟁력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도 큰 부담이다. 국내 중소기업의 60∼70%가 대기업에 OEM 방식으로 납품하는 구조에서 납기 준수는 생존과 직결된다. 그러나 52시간 근로제를 일괄 적용하면서 특히 뿌리산업 기업들이 고사 직전까지 내몰렸다. 주문이 급증할 때 생산 라인을 풀가동해야 납기를 겨우 맞출 수 있는데 근로시간 제한으로 납기를 어겨 일감을 놓치고 신용까지 잃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제조업은 수요 변동이 큰 산업이다. 비수기와 성수기가 명확하고 긴급 주문이 발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런 특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면 기업은 버틸 수 없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도입을 통해 산업 특성과 기업 여건을 반영한 유연한 대응이 절실한 이유다.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관행 개선도 시급하다. 매년 납품 단가는 내려가고 임금이 오르는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은 적자를 감수하며 버티고 있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중소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방지하고 양자 간 상생과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일본 도요타가 협력사에 적정 마진을 보장하는 사례처럼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이 장기적으로 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인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의 임금 인상분이 납품 단가에 제대로 반영돼야 비로소 건강한 제조업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불합리한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 고용 제한 제도는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의 대표적 사례다. 현행법상 내국인을 고용조정(해직·권고사직 등)하면 1∼3년간 외국인 채용이 제한된다. 경영난으로 어쩔 수 없이 정리해고를 한 기업이 회복 국면에서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지 못해 결국 폐업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외국인 고용허가 발급 전후 2개월간 내국인 고용조정을 금지하는 조항도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외국인 성실 근로자 제도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숙련된 외국인 근로자가 4년 10개월 근무 후 본국으로 출국해야 하고 2∼3개월 뒤에야 재입국할 수 있는 현 제도는 생산 현장에 공백을 만든다. 기업은 숙련 인력을 잃고 근로자는 불필요한 출국 부담을 지는 양쪽 모두에게 불합리한 구조다. 중대재해처벌법도 안전의 중요성은 분명하지만 현장 여건을 고려한 실효성 있는 안전 교육과 인식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실질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뿌리산업은 제조업의 근간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을 통해 전체 경제의 균형이 유지돼야 하며, 중소기업이 잘 돼야 근로자, 지역경제, 국가 산업 발전 등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사명감으로 오랜 기간 산업 현장을 지켜온 입장에서, 이러한 상생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중요한 때는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산업을 떠받치는 주요 분야 중 하나가 제조업인 만큼 뿌리산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부는 징벌적 대책이 아닌 실효성 있는 지원 정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기업주뿐 아니라 관계자들도 당장의 실적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에 대한 관심과 보완, 실질적 지원 확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제조 강국의 토대를 지키는 일은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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