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전 ‘우지(牛脂·소기름) 파동’으로 나락의 길을 걸어야 했던 삼양라면이 시장의 판도를 바꿀 히든카드로 우지를 꺼내들었다. 우지로 만든 새 라면을 선보인 것이다. 삼양식품은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트라우마 때문에 우지 얘기만 나오면 손사레를 쳤을 정도다. 그런 그들이 다시 ‘우지 라면’까지 만들게 된 것은 ‘불닭볶음면’의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삼양식품의 시가총액은 식품업계 최초로 올해 10조 원을 넘어선 상황이다. 삼양식품은 새 제품을 통해 명예회복과 시장확대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29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다음달 3일 신제품 출시 발표회를 열고 ‘삼양라면 1963’을 공개할 예정이다. 면을 튀기는 기름으로 팜유 대신 우지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소뼈로 우려낸 액상 스프까지 더했다. 기존 팜유 제품과는 확실히 차별화 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제품명의 ‘1963’은 첫 출시 연도를 기념해 붙였다. 주요 라면업체 3사(농심·오뚜기·삼양식품) 가운데 우지로 면을 튀긴 제품은 삼양라면 1963이 유일하다.
삼양식품은 1960~80년대 국내 시장 점유율 70%대로 20년 넘게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989년 삼양식품 등 라면업체들이 ‘공업용 우지’를 쓴다는 제보가 검찰에 접수되면서 소비자 불신이 확산됐다. 이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해당 기름에 문제가 없다고 공식 발표했고, 1995년 고등법원도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삼양식품의 점유율은 10%대까지 떨어졌다. 국내 라면 시장에서 우지도 자취를 감췄다. 대신 식물성 유지인 팜유가 업계 표준 원료로 자리 잡게 됐다.
삼양식품이 다시 우지를 꺼내든 건 내수 시장에서 명예를 회복하려는 행보라는 분석이다. 해외에서 불닭볶음면 시리즈가 인기를 얻으며 올해 상반기(1~6월) 삼양식품 매출의 80%가 수출에서 발생했지만, 국내 점유율은 농심과 오뚜기에 뒤처져 있다. 지난해 주요 라면 업체 국내 시장 점유율은 농심이 약 56%, 오뚜기 약 25%, 삼양식품 12%였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삼양식품이 이번 제품을 통해 ‘회사는 건재하다’, ‘당시 논란은 억울했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차별화된 제품을 통해 ‘불닭 원톱’ 구조를 벗어나 제품 포트폴리오를 넓히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특히 우지는 팜유보다 고소하고 깊은 맛을 내 국물 풍미를 끌어올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0~199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에게는 익숙한 맛으로 세대 공감 효과도 기대된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불닭볶음면이 해외에서는 압도적으로 잘 팔리지만 일상식으로 소비되긴 어렵다”며 “삼양이 현재 내세울 만한 국물 라면이 없는 상황에서 기존 신라면, 진라면 등 강자들이 포진한 시장에 풍미와 추억을 앞세운 우지 라면으로 승부를 걸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원재료인 우지가 팜유보다 비싸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제품 추정 가격은 1500원 안팎으로, 현재 신라면(약 1000원)이나 진라면(약 790원) 등 주요 라면 제품보다 높다. 한 업계 관계자는 “라면은 가격 민감도가 높은 소비재인 만큼 대중적으로 확산되기엔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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