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의사결정 방해 상법 개정안, 재고 필요[기고/최승재]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3월 24일 03시 00분


최승재 세종대 법학부 교수
최승재 세종대 법학부 교수
상법에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를 명기하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라는 ‘사람’에 대한 고려는 없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주주가 이사에게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길이 열린다. 자신의 이익이 공평하게 대우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주주는 지분율과 관계없이 단독으로 이사의 의무 위반을 주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 법안이 발효되면, 수많은 주주들이 마음에 안 드는 이사회의 모든 결정과 이사회가 검토하지 않은 부작위에 대해 소 제기를 하거나 배임죄로 형사 사건화할 것이다. 이사는 마치 의료 소송을 달고 사는 필수의료 전공의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이사들은 어떤 주주가 반대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되면 의사결정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사회에 ‘포퓰리즘’이 들어오는 것이다.

법원이 개별 주주의 손해 유무나 이사의 의무 위반 등에 대해서 현명하게 판단하리라 믿지만, 그 결과가 나오는 과정에서 이사들은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사들이 사전에 이를 피하기 위한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은 사라질 것이다. 회사 경영에 쓸 시간을 소송 준비에 쓰도록 하는 것은 회사와 전체 주주에게 이익이 아니라 손해가 생기는 길이다.

주주를 보호하자는 상법 개정안의 취지는 공감한다. 그러나 법에 규정하는 방식은 다른 문제이다. 판례법으로 보완이 되기 어려운 한국의 경직적인 성문법제, 세계에서 제일 모호한 배임죄와 경영판단법칙의 적용 범위도 모호한 현재 상황에서 이번 본회의 통과안이 야기할 문제는 우리 기업에 치명적이다.

이 법안이 개정된 후 한국의 핵심 기업들이 행동주의 펀드들의 사냥감이 되어 국부가 상실될 우려는 이제 현실화되었다. 이사가 회사를 위하여, 즉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는 것은 마치 국익을 위해서 일하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의 의무와 같다. 모든 주주를 평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은 특정 지역구나 특정 집단을 위해서 일해서는 안 되는 정치인의 의무와 유사하다.

그런데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국민 개인으로부터 공평 대우 위반을 이유로 소송을 당하는 경우가 있는가? 그것도 형사 기소되나? 이사는 주주총회의 결정에 복종하고, 주주총회가 위임한 사항을 성실히 수행하면 되는 것이다. 공평한 대우를 하지 않은 이사는 해임시키면 그만이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시기상조이다. 지금 같은 법문으로, 배임죄 등 관련 제도의 정비 없이 도입되어서는 안 된다. 재고가 필요하다.

#상법 개정안#이사#주주 충실 의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