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대미 수출의 41%… 美 ‘관세폭탄’ 사정권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13일 03시 00분


반도체-車-철강-알루미늄-의약품
작년 수출액 522억 달러로 늘어
대미 수출액, 트럼프 1기때의 2배
“추가관세 현실화땐 韓경쟁력 타격”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한국의 대미 경제 의존도가 1기 행정부 당시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관세 인상 품목들이 모두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고, 이들의 수출액을 합치면 전체 대미 수출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발 관세 폭탄의 파편을 동맹국인 한국이 집중적으로 맞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 방침을 발표한 반도체,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의약품의 지난해 대미 연간 수출액은 522억9164만 달러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대미 수출액이 1277억8647만 달러였는데 이 중 5개 품목이 40.9%나 차지한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 관세를 이미 결정했거나 부과를 예고한 5개 품목은 모두 한국의 주력 수출 상품이다. 자동차의 경우, 작년 국내 기업 전체 해외 수출액의 49%가 미국으로 향했다. 현대차·기아만 지난해 미국 시장에 101만 대를 수출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반도체는 대미 수출액이 지난해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지난해 7월 미국 회사와 1조4600억 원 규모의 대형 계약을 맺는 등 바이오 분야에서도 미국 수출이 늘어나는 추세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해당 품목이 한국의 주력 업종인 것뿐 아니라 최근 수년간 한국 경제의 미국 의존도 역시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첫해인 2017년 686억 달러였던 대미 수출은 지난해 1277억 달러로 두 배 가까이로 커졌다. 한국의 전체 수출 가운데 미국 수출 비율 역시 2017년 12.0%에서 지난해에는 18.7%로 급상승했다. 그간 미중 갈등을 피해 한국 기업들이 북미 지역으로 사업장을 옮기고 수출을 확대한 것이 주력 산업의 ‘관세 폭탄’이라는 철퇴로 돌아온 것이다.

이처럼 높아진 대미 의존도와 미국의 전방위적인 관세 인상 때문에 한국 기업이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응하기가 1기 행정부 당시보다 훨씬 힘들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미에 사업장을 둔 국내 대기업 관계자는 “추가 관세가 현실화되면 한국 기업들의 원가경쟁력이 크게 하락할 것”이라며 “당장 사업성 검토를 해 미국에 공장을 짓더라도 4∼5년은 걸릴 수 있기에 그사이 관세 부담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美수출 7년새 2배로 늘었는데… 관세 리스크 전방위로 확산
[트럼프發 통상전쟁] 더 복잡해진 트럼프 2기 관세전쟁
① 너무 커진 美수출 의존도… 대체시장 없어 관세부과 땐 직격타
② ‘자국 생산’만 고집하는 트럼프… 멕시코 등 인접국 진출 韓기업 당혹
③ 韓주력 바이오-반도체까지 겨냥… 통상전쟁 대응 나설 대통령도 부재

산업계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관세 정책이 8년 전 1기 때보다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것이란 우려가 적지 않다. 한국의 대미 의존도가 커지며 트럼프 정부의 작은 조치에도 한국이 받는 영향이 커졌다. 트럼프 1기의 ‘관세 폭탄’ 때 한국 기업들은 생산 기지를 멕시코로 옮기는 ‘니어쇼어링’(인접국으로 생산기지 이전)을 활용했지만, 이번엔 그 방법이 원천 봉쇄됐다. 트럼프 2기 관세 전쟁이 한국 기업들에 더 풀기 까다로운 ‘고차방정식’인 이유를 기업인들에게 들어 봤다.

① 너무 큰 미국 의존도

한국 기업인들은 8년 만에 다시 시작된 ‘트럼프 스톰(폭풍)’에서 가장 달라진 점으로 한국의 대미 의존도를 꼽았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2017년에도 미국 수출은 많았지만, 지금 정도는 아니었다. 12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한국의 대중 수출액은 1421억 달러로 대미 수출액(686억 달러)의 약 2배였다. 미국 수출 의존도는 12.0%였고, 중국은 24.8%였다.

하지만 트럼프 1기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한국 기업들이 북미로 생산 기지를 옮기기 시작했다. 점점 미국과 중국의 수출 의존도 격차가 좁혀졌다. 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이나 중간재 등을 미국 공장으로 대거 수출한 결과다. 특히 2017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사태가 벌어지면서 한국 기업들은 중국 대신 북미, 동남아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2017년 686억 달러였던 대미 수출은 2024년 1277억 달러로 거의 두 배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시장 없이 미국 시장의 관세가 오르면 한국 기업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국은 한국 입장에서 수익성 좋은 차량이 팔리는 성장 시장이었다”며 “관세로 가격경쟁력을 잃을 수 있어 공급망 재편을 고심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② “니어쇼어링 노(No), 온쇼어링 오케이(OK)”

트럼프 2기가 미국 내에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온쇼어링’을 고집하는 것도 상황을 어렵게 하고 있다. 1기 때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온쇼어링을 강조했지만 인접국에 생산 기지를 짓는 ‘니어쇼어링’에도 긍정적 태도를 보였다. 특히 트럼프 1기는 2017년 8월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신할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시작했다.

한국 대기업들은 여기에 맞춰 지난 8년 동안 협력업체들과 함께 북미 생산기지를 키웠다. 멕시코는 미국과 가까워 물류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데다 인건비도 저렴하다. 미국에 수출할 때 USMCA 무관세가 가능해 삼성전자, 기아, LG전자 등 500여 한국 기업이 멕시코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2기는 ‘미국 내 생산’만을 강조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2일 만인 1일(현지 시간)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캐나다와 멕시코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게 대표적이다. 트럼프 1기 관세정책의 핵심은 ‘중국 견제’였지만 이번엔 우방이라도 대미 무역흑자를 내는 국가들이 대상이 됐다. 멕시코에 있는 한국 기업 관계자는 “인건비가 8∼10배에 달하는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게 사업성이 있을지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③ 반도체까지 관세 전쟁 확전

트럼프 1기 때는 관세 전쟁의 전선(戰線)이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 등에 국한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도체와 바이오에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발표가 나왔다. 모두 한국 기업들이 잘하는 사업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통상 관세를 매기지 않는 반도체까지 걸고 넘어진 것이 의외”라며 “숙련공 수급이나 인건비를 고려하면 미국이 반도체 공장을 짓기 좋은 입지가 아니라서 고심”이라고 말했다.

확전되는 관세 전쟁의 여파는 이미 예측치로 나온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한국에 10% 보편관세를 부과하면 국내 중소기업의 대미 수출액은 11.3%(1조2000억 원) 줄어든다. 트럼프 1기 정부가 본격 관세 부과에 나섰던 2018년 한국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했다.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고 있어 권한대행 체제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출범과 동시에 관세 부과에 나섰다”며 “한국의 대응도 더 빨라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미국#대미 수출#관세폭탄#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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