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 신용대출 반토막, 저신용자 ‘불법사채’ 내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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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새 이용자 47%-잔액 36% 줄어
고금리속 수익성 악화에 문턱 높여
“급전 필요해 불법 알면서도 이용”
“최고 이자율 유연화 등 대책 필요”

배달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양모 씨(29)는 월세 1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시중은행부터 대부업체까지 모두 돌며 대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불법사금융에 발을 들인 그는 “100만 원이던 대출 원금이 어느새 1200만 원까지 불어났다”며 “연 20%의 법정 최고금리라고 해도 돈을 빌릴 곳이 있었다면 이런 비참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대부업체의 신용대출 이용 고객이 3년 새 반 토막 나고 대출 잔액도 3분의 2 수준까지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정 최고 이자율이 연 20%로 제한된 상황에서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수익성이 나빠진 대부업체들이 저신용자 신용대출에서 손을 떼면서다. 제도권 금융 ‘최후의 창구’에서 외면당한 서민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려 약탈적 추심과 각종 범죄에 노출돼 있다.

● 대부업체 거래자 3년 만에 46% 급감

8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최승재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개인신용대출잔액 상위 69개(지난해 6월 말 기준) 대부업체의 거래자 수는 2020년 6월 말 94만3444명에서 지난해 6월 말 50만4020명으로 46.6% 급감했다. 같은 기간 신용대출 잔액도 4조3326억 원에서 2조7674억 원으로 36.1% 감소했다.

이는 정부가 2021년 7월 법정 최고 금리를 연 24%에서 20%로 인하한 상황에서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자 대부업체들이 신용대출의 문턱을 높인 결과다. 통상 수신(예·적금) 기능이 없는 대부업체들은 저축은행·캐피털에서 돈을 빌린 뒤 중·저신용자 고객에게 대출을 내주며 이윤을 챙겨 왔다. 그런데 최근 자금조달 비용은 커지고 고객에게 받을 수 있는 이자는 줄어들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된 탓에 신용대출을 취급한 요인이 줄어든 것이다.

실제로 2020년 6월 말까지만 해도 6500명이 넘는 고객과 480억 원의 신용대출 잔액을 보유하고 있던 한 대부업체는 지난해 6월 말 고객 수가 500명대로 쪼그라들었고, 신용대출 잔액은 6억 원 수준으로 급감했다.

●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저신용자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후 대부업 이용자들의 10.6∼23.1%가 불법 사금융에 유입된 것으로 예상된다. 2021년 상반기(1∼6월) 주요 대부업체의 신용대출 거래자 수(74만 명)를 고려하면 법정 최고금리 인하로 최대 17만 명이 불법 사금융으로 밀려났음을 의미한다. 그보다 앞선 2018년 2월 법정 최고금리가 연 27.9%에서 24.0%로 인하됐을 당시에도 금융당국이 추적조사를 벌인 결과 1년간 3만8000명이 불법 사금융에 유입된 것으로 추산된 바 있다.

대구에서 옷 수선 가게를 운영하는 이모 씨(48)도 지난해 10월 불법 사금융에 처음 손을 댔다. 하루 수입이 1만∼2만 원인 형편에 신용도가 낮아 제도권 대출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는 그는 소액인 20만 원을 빌렸다가 500만 원을 갚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씨는 “돈이 없는 이들에게 급전을 빌릴 수 있는 제일 가까운 창구는 불법 사금융뿐”이라며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에 불법인 것을 알면서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이들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저신용자들의 급전 대출 수요를 제도권의 울타리 안으로 가져올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불법 사금융 피해를 예방하는 것은 결국 수요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이라며 “제도권 최후의 창구인 대부업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대부업계 관계자는 “비교적 낮은 금리에 은행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우수 대부업’ 제도가 활성화되거나 법정 최고 이자율 유연화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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