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지식근로자의 일, AI에만 의존하면 미래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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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지 업무 AI로 대체하면?
효율성 높아지나 직관, 창의성 하락
직원들에 형식지 육성 기회 줘야

‘말을 타고 달리는 우주인을 실사 사진 형태로’라는 프롬프트에 따라 AI가 만들어낸 이미지. 사진 출처 오픈AI의 DALL.E-2 서비스 openai.com/dall-e-2
‘말을 타고 달리는 우주인을 실사 사진 형태로’라는 프롬프트에 따라 AI가 만들어낸 이미지. 사진 출처 오픈AI의 DALL.E-2 서비스 openai.com/dall-e-2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빠르게 일상에 침투하면서 AI가 ‘지식근로자’라 불리는 화이트칼라의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AI 때문에 없어진 일자리는 이미 4300여 개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AI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AI가 지식근로자의 일을 얼마나 대체할 것이고, 어떤 일을 주로 대체할 것이며, 반대로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일은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경영 석학들이 남긴 지식관리에 대한 통찰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4년 3월 1호(388호)에 실린 ‘지식경영 연구로 본 화이트칼라의 미래’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 지식관리의 핵심, 암묵지 vs 형식지


경영학에서 지식근로자의 일과 지식경영에 관한 연구는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다. 지식관리 혹은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이라고 불리는 이 분야는 지식근로자 업무의 본질이 무엇이고 컴퓨터에 의해서 어떻게 대체 및 개선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 그중 대표적 연구는 1995년 노나카 이쿠지로 일본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와 다케우치 히로타카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공동 집필한 ‘지식창조 비즈니스(The Knowledge-Creating Company)’라는 책에 공개돼 있다. 이 책은 지식 관리를 잘하는 일본과 미국 기업에 대한 분석을 통해 기업 내에서 어떻게 지식의 창출과 전파가 이뤄지는지를 다루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는 기업 경영에 필요한 지식의 종류를 ‘형식지(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tacit knowledge)’라는 두 가지 종류로 나눈 것이다. 형식지는 지식 중에서 텍스트나 그림 등을 통해 명확히 전달하고 학습할 수 있는 지식, 즉 ‘문서화 가능한 지식’이다. 반면 암묵지는 텍스트나 그림을 통해서 표현하거나 전달하기 어려운 지식이다. 이를테면 셰프의 요리 비결이나 시장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잘 포착하는 경영자의 능력 등이 그 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기업의 성공적인 지식 관리를 위해선 형식지와 암묵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시너지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암묵지와 형식지는 크게 외부화, 내부화, 조합, 친교의 과정을 통해 조직 내에 확산된다.

● AI가 인간을 대체할 수 없는 분야

최근 AI가 잘하는 지식 관련 업무를 보면 모두 다 형식지다. AI의 작동 원리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다. AI는 대부분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에 대해 학습용 데이터를 사용해 학습을 한다. 답이 명확한 문제일수록 더 잘 학습할 수 있기 때문에 형식지의 성격이 강할수록 학습 효과가 좋다. 반면 암묵지의 성격이 강한 분야에서는 학습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학습을 위한 데이터를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AI가 발전해도 암묵지에 해당하는 분야는 사람을 대체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경영자의 역량을 구성하는 요소를 생각해 볼 때 형식지에 해당하는 논리적, 분석적인 부분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말로 설명이 안 되는 암묵지에 해당하는 부분도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고경영자의 경우 본인의 직관이나 통찰력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기업을 위기에서 구하거나 크게 성장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는 AI가 더 발전해도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분야다.

또 한 가지, AI가 잘하지 못하는 분야 중 하나는 창의적인 일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닌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던 것을 관련짓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프라이드 치킨과 고추장 양념을 연결해 양념치킨을 개발하고, 컴퓨터와 전화를 연결해 스마트폰을 만드는 식이다. 물론 AI도 학습한 것들을 연결하고 조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우주인과 말을 결합해서 ‘말을 타는 우주인’ 이미지를 만든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런 AI의 창의성은 결국 인간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한계가 있다. 또한 조합의 대상이 기존에 학습한 것으로만 제한된다는 한계도 있다.

● 지식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AI가 형식지에 해당하는 일을 잘하니 형식지에 해당하는 일은 AI에 맡기고 사람들은 암묵지에 해당하는 부분에 집중하면 효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형식지와 암묵지가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암묵지를 창출하기 위해선 형식지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면서 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AI가 형식지에 해당하는 일을 잘한다고 AI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면 암묵지에 관련된 업무 능력도 저하될 수 있다. 따라서 특히 리더의 역량을 개발할 때, AI에 특정 업무를 완전히 맡기기보다는 일부라도 사람이 직접 수행하면서 지식을 체화하고 경험을 쌓을 기회를 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찬가지로 창의성도 형식지의 반복적 학습에 의한 체화 과정에서 개발되는 경우가 많다. 창의성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AI가 제공할 효율성이라는 달콤함 때문에 기업이 인간 근로자에게 형식지를 쌓을 기회를 제한하면 창의성을 빼앗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임일 연세대 경영대 교수 il.lim@yonsei.ac.kr
정리=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지식근로자#ai#형식지 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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