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선진국으로의 도약, 최저가 입찰 관행 문제 해결이 관건”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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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기업이 미래다] 구매입찰 제도의 모호한 평가, 부실 제작 업체 낙찰로 이어져
납기 지연 등 정상 운영에 차질… 기술적 종합 평가 등 우선돼야
트램, 새 교통수단으로 부각… 운영 방식 등 연구개발 필요

지난해 11월 14일 울산 남구 옛 울산항역 일원에서 열린 수소전기트램 첫 시승 행사 현장. 울산시 제공
지난해 11월 14일 울산 남구 옛 울산항역 일원에서 열린 수소전기트램 첫 시승 행사 현장. 울산시 제공
철도산업은 안전성, 경제성, 탄소 배출 저감 등 효율성뿐만 아니라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국가 미래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철도는 국토의 균형 발전을 견인하는 교통 인프라 구축의 근간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이산화탄소 발생이 매우 낮아 친환경 교통수단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배터리,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가 활용되면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청정에너지 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철도는 국내 산업계의 지속 성장·발전을 견인할 핵심 요소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내 철도 기술 발전에 비해 철도차량 산업에 대한 인식과 관련 제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발전을 저해하는 제도와 관습이 많다. 특히 시대착오적인 철도차량 구매 절차는 저가 가격경쟁을 부추겨 국민의 안전과 철도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로 꼽힌다. 철도차량 발주의 문제점과 철도 시장의 변화, 새로운 친환경 교통으로 주목받고 있는 트램까지 철도 선진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한국 철도차량의 현주소에 대해 알아봤다.

철도산업 발전 저해하는 저가 입찰 폐해

국내 철도차량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그동안 꾸준히 지적돼 온 것이 바로 철도차량 도입을 위한 구매 입찰 제도에 관한 것이다. 수요자인 철도 운영 공기업들이 철도차량 구매를 위해 공개경쟁 입찰 제도를 활용하면서 잘못된 절차와 방법들로 인해 구매 입찰 제도의 본질이 흐려졌다는 얘기다.

발주 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철도차량의 구매를 집행하는 만큼 철도 이용자인 국민의 안전한 이동권을 포함해 철도 운영의 공익에 합당하게 최선을 다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발주 기관이 운영하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양질의 철도차량을 합당한 비용으로 필요한 시점에 구매해야 한다.

현재 국내 철도차량의 입찰은 ‘2단계 기술·가격 분리 동시 입찰’ 방식이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이 일정 수준의 기술 평가 점수를 통과하고 나면 가격 비교만을 통해 최저가로 투찰한 업체가 수주하는 형태다. 하지만 점점 복잡해지고 고도화되는 차량 기술의 발전 추이와는 반대로 입찰자의 제안 내용과 계약 이행 능력을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평가하지 못하는 발주 기관의 엉성한 평가 기준이 문제다. 이로 인해 입찰 제안서 제출만으로 누구나 평가를 통과하게 돼 제작 능력 및 계약 이행이 여의치 않은 업체라도 최저가 덤핑 입찰이 낙찰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심지어 계약한 제작 업체가 설계, 제작 능력 등 전반적인 계약 이행 능력이 부족해 정상 납기를 지키지 못하고 1년 이상 납기 지연이 발생했을 뿐 아니라 납품한 전동차의 품질과 성능 이상으로 정상적인 영업 운행에 지장을 준 사례까지 있었다.

또한 수주 업체는 저가 낙찰로 인한 손실을 저가의 해외 부품 사용, 생산 인력 재하청 등으로 만회하고 있어 내수시장 의존도가 큰 한국 철도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저가 투찰로 인해 국내 제작사뿐만 아니라 철도차량 부품 제작사에도 부담이 전가되면서 영세한 부품 제작사는 줄도산을 맞고 있다. 값싼 중국산 부품 등으로 가격경쟁에 밀려 철도차량 부품의 무역수지 적자도 심화되는 추세다.

제작사가 계약 금액 내에서 철도차량을 납품하기 위해 저가의 해외 부품을 사용하면서 국내 부품 업체를 도산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관행들이 결국엔 제작 및 납기 지연, 품질 불량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국내 철도차량 구매 입찰 변화의 바람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협상에 의한 계약’을 제안한다. 협상에 의한 계약은 발주자가 여러 제작사의 제안서를 평가해 자신이 원하는 철도차량을 입찰자가 제대로 이해하고 제안했는지, 기술적·계약적으로 계약 이행이 가능한지를 세세히 확인한 후 가장 유리하다고 인정된 제작사와 계약하는 것을 말한다. 한 관계자는 “이 계약 방식을 도입하면 계약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설계·제작 등 계약 이행 능력 부족으로 인한 납기 지연, 저가 부품 사용 등 여러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철도차량 업계에 공공연히 알려진 구매 입찰 평가를 둘러싼 잡음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

다행인 것은 철도차량 업계의 끊임없는 문제 제기로 발주처에서 변화가 시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7월 서울교통공사는 수명이 다한 노후 전동차를 교체할 목적으로 5, 7호선 전동차 216량 구매를 위한 입찰을 준비하면서 기술 평가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초안을 마련하고 사전 규격을 처음 공개했다.

그동안 평가 기준이 낮고 변별력이 없다는 지적과 함께 자체 시행착오를 겪으며 대안 마련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도 개선을 반대하는 일부 입찰 관계자에 의해 이전의 평가 기준으로 최종 입찰을 하게 돼 결국 저가 입찰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철도차량 업계는 작년 한국철도공사, 서울교통공사 등이 보여준 평가 기준 개선 시도를 변화의 시작으로 보고 올해 구매 입찰 제도의 변화가 실질적으로 가능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대한민국 트램 상용화 진통 겪는 까닭은?

또 하나 2023년 철도차량 산업에서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지방자치단체의 새로운 교통수단 도입 과정에서 떠오른 ‘무가선 트램(노면 전차)’ 상용화 이슈다. 산업화를 거치며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췄던 트램이 청정에너지 수요 증가, 기술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트램은 이미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효용성이 입증된 대중교통 시스템이다. 지하철이나 경전철보다 적은 비용으로 구축이 가능한 장점 때문에 국내 도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트램은 철도 시스템을 일반 도로에 적용한 하이브리드 형태의 교통 시스템으로 수소전지와 같은 청정에너지를 활용해 국내 기술로 개발한 트램도 상용화를 기다리고 있다.

국내 각 지자체에서 30여 개의 트램 노선이 검토되고 있는데 트램의 도입을 위해서는 초기 단계에서 도시 철도망 구축 계획을 수립하고 이후 사업타당성 조사를 통과해야 기본 계획, 기본 설계, 사업 계획 과정을 거쳐 착공에 들어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각 지자체의 노선 선정 문제가 중앙정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와 맞물려 난항이 예상된다. 또한 적용할 트램 차량 시스템에 사용될 에너지 선정과 활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착공 단계의 사업타당성을 확보한 트램 사업은 동탄도시철도, 울산 트램 1호선과 부산 씨베이파크선 세 곳뿐이다.

저가 트램 도입 지양하고 산업의 미래를 생각해야

트램의 도입 과정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차량 구매 비용을 낮추기 위한 편법도 문제가 되고 있다. 철도산업은 국비 60%, 지방비 40%로 구성된 국가 재정사업으로 기획재정부의 예비 타당성 조사가 매우 중요한데 많은 지자체의 트램 사업은 기존 도로에 따로 트램 노선을 나눠줘야 하므로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잠식하게 된다. 따라서 비용 대비 편익(B/C)이 부편익(마이너스)으로 나타나게 돼 실질적인 추진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것이 아니면 지자체의 자체 예산으로 트램을 도입해야 하는데 지자체의 예산 사정을 보면 녹록한 일이 아니다.

2025년 9월 개통 예정으로 진행 중인 서울 위례선의 경우 국내 철도차량 구매 입찰 방식인 ‘2단계 기술·가격 분리 동시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국내 원천기술이 없는 시스템이 낙찰돼 대부분 기술과 부품을 중국에서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능이 떨어지는 저가의 중국 부품을 사용해 크게 문제가 된 바 있다. 입찰 시작 단계부터 WTO 정부조달협정 미가입국인 중국의 참여를 당연히 배제한다고 발표했으나 결과는 아니었고 ‘멀쩡한 국내 기술을 배제한 채 해외의 저가 제품을 무리하게 도입한다’고 서울시의회 등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에 계약자와 서울시는 일단 납품을 완료하고 4년 뒤 부품을 교체하는 시기에 국산 부품으로 바꾸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관련 업계는 누가 교체 비용을 부담하는지, 교체 전 발생하는 운행 사고의 책임은 누가 지는지 등 많은 현실적 문제점을 배제한 허술한 입장 발표라고 비판하며 “정부조달협정 미가입국인 중국이 우리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국내 철도차량 입찰에 무차별적으로 참여하게 된 현실에서 앞으로도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고 우려했다. 이 또한 국내 철도차량 구매 입찰에 만연해 있는 부실한 기술 평가와 낮은 예산 책정의 연장선에 있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각 지자체가 트램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당장의 비용 절감을 위해 장기적인 유지보수 비용이나 수명 주기 비용은 물론 미래의 국가 철도산업 발전에 대한 고민 없이 차량 구매 비용만 낮추려고 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태”라고 우려를 표했다.

우리 기술로 개발한 수소 전기 트램

트램 도입을 검토하는 지자체들은 전기선이 없는 이른바 무가선 방식을 주로 검토하고 있다. 도시 미관이나 주변 환경을 고려해 전차선이 있는 유가선보다는 전차선이 없는 무가선 방식이 트램 신규 도입 시 더 유리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완전 무가선 방식은 운행 선로의 길이를 30㎞ 내외로 길게 구상하는 우리나라의 교통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배터리 트램의 경우 충전 시간이 2시간 정도로 길고 수명이 3년 정도로 내구성이 낮아 한계가 있다.

운영 방식에 따라 어떤 에너지를 사용하는 트램을 도입할 것인가도 뜨거운 화두다. ‘슈퍼 커패시터(고용량 축전기)+배터리’ 방식과 ‘수소 전기’ 방식의 에너지가 검토된다. 이 중 슈퍼 커패시터+배터리 방식은 지상의 각 정거장에 슈퍼 커패시터를 설치해 트램 운행에 적합한 충전 속도와 운행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단점으로는 정거장마다 전력 공급 설비 구축을 위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국내에서 개발이나 적용된 사례가 없는 기술로 유지보수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반면 수소 전기 방식은 수소에너지를 이용하며 1회 충전으로 전 노선 운행이 가능하다. 또한 국내 기반 기술 확보로 유지보수에 유리한 장점도 있다. 반면 비싼 수소 가격에 대한 부담이 있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수소에너지 사업에 참여하면서 비용 문제는 빠르게 극복되고 있는 추세다. 또 수소 전기를 활용한 철도차량 또한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개발 중이거나 부분적으로 상용화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소 전기 트램을 개발한 현대로템이 앞으로 전동차, 기관차에 차례로 수소연료전지를 적용할 계획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 7월 현대로템이 개발과 실증을 총괄하고 한국자동차연구원,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울산테크노파크가 공동 참여해 수소 전기 트램용 연료전지 시스템 및 주요 부품을 개발하고 해당 부품을 탑재한 수소 전기 트램 시험 차량을 제작한 바 있다. 이 수소 전기 트램은 ‘오송 철도종합시험선로’에서 성능 평가를 완료했고 2023년 말 울산에서 2500㎞의 실증 사업을 성공리에 마쳤다. 울산시는 지난해 8월 기획재정부의 타당성 재조사를 통과한 ‘도시철도 1호선 사업’에 이 수소 전기 트램을 투입할 계획이며 2029년 개통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슈퍼 커패시터를 활용한 배터리 방식은 이미 위례 트램에서 충분히 경험했듯이 기술적이나 경제적으로는 물론 국내 산업 발전이나 국가 정책적으로 무리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순수한 청정에너지로서 미래 산업 발전성이나 활용성 등을 따져 볼 때 세계적으로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수소 전기 방식이 장기적으로 훨씬 저렴한 방법이 될 것이다”라며 “어느 것이 더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면밀하게 살펴볼 일이다”라고 제언한다.

우리나라는 1994년 고속전철 도입 확정으로 철도차량 발전의 큰 전환점을 맞았고 이를 통해 철도차량의 설계부터 생산에 이르기까지 기술적인 혁신을 하는 계기가 됐다. 또 입찰 단계부터 평가 및 계약과 계약 이행 과정의 관리를 거쳐 납품받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현대적인 계약 관리 기법을 도입해 제도적인 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은 실제 차량을 구현해 운행하기까지 수많은 철도 기관 관계자와 연구기관, 제작 종사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과다. 하지만 현재 철도차량 구매 현장의 제도와 인식은 이러한 기술적 발전에 걸맞은 시대적 요구 사항을 담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무분별하게 해외 기술과 저가 부품을 도입하면 엄청난 유지보수 비용은 물론 정상화에 투입되는 비용과 시간적 손실까지 발생한다. 국민의 세금인 비용의 낭비와 국내 철도차량 및 부품 산업에 미치는 정치·경제적 폐해 등을 생각할 때 과연 무엇이 옳은 선택이 될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태현지 기자 nadi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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