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지는 아파트 고급화 경쟁… 서민이 갈 아파트가 없다[황재성의 황금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23일 08시 00분


코멘트

1: 갈수록 치열해지는 아파트 단지 고급화 경쟁
2: IMF가 도화선 되고, 금융위기가 판 키웠다
3: 팬데믹 우려와 고령화에 고급화 경쟁 계속될 듯
4: 고분양가 빌미, 관리비 부담 증가 등 부작용

황금알: 황재성 기자가 선정한 금주에 알아두면 좋을 부동산정보
매주 수십 건에 달하는 부동산 관련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돈이 되는 정보를 찾아내는 옥석 가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동아일보가 독자 여러분의 수고를 덜어드리겠습니다. 매주 알짜 부동산 정보를 찾아내 그 의미를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아파트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아파트 단지 고급화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지역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 전경이다. 동아일보 DB
“5년 내 이사를 계획 중인 10명 중 7명 이상은 아파트를 원한다.”

주거시설로서 아파트에 대한 높은 선호도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 이를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론조사전문업체 한국리서치가 20일 발표한 주간리포트(‘2023 부동산인식조사:부동산 투자 및 주택 보유 인식’)입니다.

이에 따르면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가운데 5년 내 이사를 계획 중인 응답자 3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1%가 다음 주거지로 아파트를 원했습니다. 뒤를 이어 단독주택(응답률·15%)이 큰 차이를 보이며 2위를 차지했고, 연립주택·다세대주택(9%) 오피스텔·고시원(4%) 여관 상가 등 비거주용 건물 내 주택(1%) 등의 순이었습니다.

국토교통부가 22일 발표한 ‘2022년도 주거실태조사’에서도 이는 확인됩니다. 전국 5만 100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결혼한 지 7년 이하인 신혼부부의 73.3%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높은 아파트 선호도는 양질의 주거 서비스에서 비롯됐습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 이사 지역 선정 이유로 응답자들은 ‘시설이나 설비가 더 양호한 집’(34%)을 가장 많이 찾았습니다. 국토부 조사에서도 이사 경험이 있는 응답자의 절반가량(48.7%)이 현재 주택을 선정한 이유로 ‘시설이나 설비 상향’을 꼽았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분양되는 아파트의 고급화 경쟁이 치열합니다. 특히 기술 발전에 따라 아파트 실내 설비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주민공동시설과 단지 내 조경에 초점을 맞춘 고급화 경쟁에 적극적입니다. 피트니스센터와 골프 연습장은 기본이고 호텔 수준의 고급 수영장, 스카이라운지 등이 설치되고 있습니다.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전담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이런 분위기에 가세했습니다. 경기 과천지식정보타운에서 다음 달(내년 1월) 입주 예정인 통합공공임대주택 시범단지에 무용, 연극 등 공연 관람이 가능한 문화공간, 아동돌봄시설, 바리스타존 등을 배치했습니다.

이에 따라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지 않아도 여가와 문화생활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이런 시설 대부분을 무료로 이용하거나 외부시설 이용 때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이는 집값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당분간 이 같은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코로나19 이후 아파트 주거공단이 단순히 잠만 자는 곳에서 학업과 업무를 같이 볼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바뀌면서 단지 환경 고급화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도 이를 부추기는 요인입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닙니다. 우려되는 부작용이 적잖습니다. 무엇보다 아파트 단지 고급화가 고분양가의 빌미를 제공합니다. 입주자가 매월 내는 관리비도 올라갑니다. 운영이나 관리 어려움 등을 이유로 주민공동시설을 제대로 이용하지 않으면서 자원 낭비라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현재 국내에서 매년 지어지는 수십만 채의 주택 가운데 아파트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습니다. 국토부 ‘2023 주거종합계획’에 따르면 올해 준공될 주택 45만 9000채 가운데 아파트가 39만 3000채로 무려 85.7%에 달합니다. 아파트 주민공동시설을 중심으로 단지 고급화의 현주소와 원인, 전망, 보완 과제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 1991년 제도 도입…의무시설 이외 최대 38개까지 늘어나
아파트 단지 고급화는 1997년 말 발생한 외환위기로 촉발됐고, 2008년 금융위기로 본격화됐다. 사진은 서울 강남지역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위치한 독서실 모습이다. 동아일보 DB
아파트 단지 내 주민공동시설은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시설입니다. 1991년 제정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이하 ‘주택건설기준 규정’)에서 입주민의 편익 제고를 위해 일상 주거생활에 필요한 구매시설 생활시설 의료시설 주민운동시설 등을 단지 규모에 따라 적절하게 설치하도록 의무화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115차례에 걸친 개정을 거친 주택건설기준 규정은 현재 경로당, 어린이놀이터 등 16종을 주민공동시설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주민공동시설 총량제를 적용해 단지 규모별로 의무적으로 설치해야만 하는 시설을 정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150채 이상~300채 미만이면 경로당과 어린이놀이터를 지어야 하고 ▲300세대 이상~500세대 미만은 어린이집 ▲500채 이상이면 주민운동시설, 작은도서관, 다함께돌봄센터를 추가해야 합니다.

제도적인 기반 마련과 별개로 아파트 단지 고급화 경쟁은 1997년 말 터진 외환위기가 도화선이 됐습니다. 당시 김대중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통한 경제 위기 극복을 목표로 분양가 자율화 조치를 단행한 것입니다.

이후 건설사들은 이전과 다른 설비와 단지 환경을 갖춘 고급 아파트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습니다. 이런 사실을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아파트 브랜드를 경쟁적으로 선보였습니다.

▶‘더퍼스트메트로센트럴파크뷰’ 아파트 이름은 왜 이렇게 됐을까 [황재성의 황금알]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428/119062282/1

이 과정에서 아파트 실내에 적극적으로 정보기술(IT)을 도입하고, 옷장이나 각종 주방가전 제품을 아파트에 내장한 형태(‘빌트인’)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지하에 주차장을 만들고, 지상주차장을 없앤 아파트도 이때 선보였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아파트 고급화 경쟁에 기름을 붓습니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서면서 절대적인 공급 부족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급격하게 수요가 위축되자 건설사들이 새로운 수요 발굴을 위해 아파트 단지 고급화에 공격적으로 나선 것입니다. 이때부터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 결과 최근 입주하는 아파트를 살펴보면 주민공동시설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있습니다. LH 산하 토지주택연구원이 최근 펴낸 보고서(‘LH 공공분양주택 주민공동시설 특화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이러한 상황이 잘 담겨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민공동시설 가짓수는 단지 규모에 따라 민영아파트의 경우 8개에서 최대 17개까지 추가됐습니다. 단지 규모와 관계없이 독서실과 피트니스센터, 게스트하우스, 재활용품 창고, 소포보관소 등이 공통적으로 추가됐습니다.

공공분양아파트의 추가시설은 훨씬 다양해 최대 38가지에 달했습니다. 작은 도서관이나 공동육아방, 방과후돌봄, 주민카페 등이 공통으로 추가됐고, 1000채 이상 단지에서는 펫하우스, 어린이식당 등도 선보였습니다.

● 차별화 어려운 아파트 상품의 마케팅 수단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의 재연 가능성은 아파트 단지 고급화 경쟁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원인 가운데 하나다. 사진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2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코로나19 검사소 앞을 외국인 입국자가 지나가는 모습이다. 동아일보 DB
이 같은 아파트 고급화 경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파트의 상품특성에서 비롯됐습니다. 아파트 주거공간은 공장에서 찍어낸다는 비하 섞인 평가를 받을 정도로 차별화가 쉽지 않습니다. 주거공간 설비도 기술 발전에 따라 기능적으로 차별화를 꾀하기가 어렵습니다.

결국 선분양으로 아파트를 공급해야 하는 건설사로서는 주민공동시설과 단지 조경 고급화를 통해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또 이를 홍보나 판매 제고를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토지주택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포스코건설을 꼽았습니다. 아파트 주민공동시설에 ‘클럽 더 샵’이라는 브랜드를 붙이고, 친환경 디자인 추구하며, 단지 내 식물원 카페 ‘플랜트리움’을 홍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밖에 대우건설은 하이앤드 브랜드인 ‘써밋’을 적용한 스카이커뮤니티를, 현대건설은 건설업계 최초로 부산 사직에 ‘스크린 야구장’을 설치했습니다. 롯데건설은 ‘살롱 드 캐슬’이라는 프랑스어와 영어를 합성해 주민공동시설 브랜드를 선보였습니다.

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면 고급 주거시설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피트니스 시설이나 물품 창고, 독서실, 회의실 등과 같은 공간을 개인 세대에서 마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결국 주민공동시설로 배치함으로써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입니다.

코로나19 이후 아파트 단지 공간에 대한 시각 변화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주거공간이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업무를 처리하고 학업을 하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고, 아파트 단지 고급화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최근 20년간 글로벌 팬데믹은 6차례나 반복됐습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 플루, 2014년 에볼라 서아프리카 유행, 2015년 메르스, 2016년 지카 바이러스, 2020~2022년 코로나19 등입니다. 결국 언제든 팬데믹은 발생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고, 그에 맞는 시설에 대한 수요는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초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와 같은 인구 구조 변화도 단지 고급화 경쟁을 불러오는 요인입니다. 활동량이 떨어지는 노인 세대는 아파트 단지 주변으로 생활 반경이 크게 줄어듭니다. 또 건강 관리를 위한 시설이 필요합니다.

● 주민공동시설 30% 이상 2년 넘게 방치하기도
아파트 고급화 경쟁은 불가피하게 아파트 관리비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사진은 서울 강남지역의 한 아파트 1층 우편함에 관리비 고지서가 꽂혀 있는 모습이다. 동아일보 DB
고급화된 주민공동시설은 아파트 가치를 높이고 입주민들의 거주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이는 집값에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건설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단지를 고급화하고, 각종 마케팅 수단으로 삼으려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아파트 고급화 경쟁으로 초래된 부작용도 적잖습니다. 우선 건설 원가 상승에 따라 아파트 분양가 고공행진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로 서울 강남에서는 재건축을 추진 중인 아파트조합이 단지 설계를 외국계 기업에 맡기고, 수백억 원대의 비용을 지불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내년 1월 입주할 서울 강남지역 A아파트의 경우 올해 5월 조경 공사비(3.3㎡ 기준)를 당초 17만 원에서 44만 원으로 2.6배 높였습니다. 주변 아파트의 조경공사비가 52만~79만 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한 조치였습니다.

주민공동시설 유지 비용도 문제입니다. 이용자 전액 부담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운영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운영비 대부분은 공용부분 관리비에 반영됩니다. 즉 관리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한국부동산원이 국토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공동주택관리 정보시스템(K-apt)’에 따르면 9월 서울지역 아파트 관리비(1㎡ 기준)는 3059원입니다. 이 가운데 공용관리비가 1502원으로, 절반에 가깝습니다.

이용이 없어 방치되거나 노후화나 하자 등의 이유로 주민공동시설이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후죽순처럼 조성되고 있는 야외수영장이나 연못, 분등 등과 같은 수변 시설도 겨울철에 활용도가 떨어집니다.

관리 부담에 아예 주민공동시설을 활용하지 않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B아파트의 경우 입주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주민공동시설의 30%가량은 문을 걸어둔 채 개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재화와 달리 생산비를 투입해 물리적인 양을 증가시킬 수 없는 부동산의 특성(일명 ‘부증성’)을 감안할 때 자원 낭비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위화감을 부추긴다는 논란도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지어진 아파트는 가격이 다르더라도 단지 내 시설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새로 지어진 아파트는 이전 아파트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래되었거나 단지 규모가 작은 아파트는 물론이고, 비아파트 거주시설 입주민으로서는 빈약한 편의시설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주민공동시설을 인근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즉 해당 시설을 지역공공시설처럼 활용하게 하고, 이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것입니다.

주민공동시설의 효율적인 활용과 관리가 이뤄지도록 입주민과 위탁관리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시설 활용 방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컨설팅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합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