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후반 유럽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원동력은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였다. 이로 인해 우리는 전례 없는 속도와 형태로 현대문명을 맞이했다. 하지만 전체 인류 문명에서 찰나에 불과한 100년의 전성기를 뒤로하고, 우리는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위기에 봉착했다. 최근 ‘탄소중립’이라는 용어가 뉴스와 언론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탄소중립은 더 이상 추상적인 어젠다가 아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반영하듯 EU 택소노미도 무탄소 에너지인 원자력을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 포함했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도 원자력에 대한 세액 공제를 포함하고 있다. 21일에는 2030년까지 유럽 내 제조업의 40%를 무탄소 기술로 전환한다는 ‘Net-Zero Industry’ 법안이 유럽의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에도 원자력이 포함돼 있다. 이제 탄소중립은 법에 근거한 무역장벽으로도 작용하고 있어, 무탄소 에너지로의 산업구조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탄소중립 달성에 대한 전 세계적 압박과 함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 무력 충돌에 따른 에너지 안보 위기까지 겪으면서 원자력 에너지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가 이율배반적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안보는 1970년대 석유파동부터 중요한 과제였다. 이는 시대와 정권에 관계없는 최우선 과제이며, 에너지원 다변화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반면 탄소중립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특정 에너지원만을 고집한다. 이 둘을 모두 만족하는 에너지원은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 정도다. 따라서 무탄소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육성하고 24시간 안정적 전력 공급이 가능한 원자력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원자력 발전을 건설, 운영, 해체 등 전 주기에 걸쳐서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중저준위방폐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특별법을 제정해 성사됐다. 고준위방폐장에 대한 특별법은 2차례 공론화 이후 정부가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국회는 3건의 특별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방폐장을 짓기 위해서는 관리 시설 부지 선정 등 전 과정을 사회적 합의로 진행시키기까지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선행돼야 할 이유다.
특별법 제정은 지금 바로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은 탄소중립, 에너지 안보를 동시에 요구하는 냉혹한 시대에 살아갈 것이다. 세계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 유럽을 중심으로 바쁘게 만들어지는 새로운 법안들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생존을 위한 움직임을 시작해야 한다. 현 국회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국회 내에 고준위방폐장 부지 선정에 착수할 수 있는 기본적인 내용만이라도 담아서 법을 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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