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5주새 2만5000명 몰린 ‘생계비 대출’… 40, 50대가 절반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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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소액 생계비 대출 한 달 살펴보니
대출 이용자 20대도 11%
1인당 평균 대출액 61만원
월세-의료비-공과금 등에 활용

《“오랫동안 일용직으로 중국음식점 배달 일을 해 왔는데 물가가 오르면서 일거리가 줄어서 요즘 일할 곳을 못 찾고 있습니다. 월세가 밀리면서 지금 살고 있는 고시텔에서 쫓겨날 처지라 50만 원이라도 꼭 빌리고 싶네요.”

지난달 대전 중구의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찾아 소액 생계비 대출을 받은 50대 남성 A 씨의 사연이다. 신청 당일 생계비 대출을 받은 A 씨는 배달업에서 기존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취업 방법도 함께 안내받았다.

3월 27일부터 전국 46곳의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 마련된 소액 생계비 대출 상담창구에는 A 씨처럼 절박한 형편을 호소하는 신청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출시 이후 5주 동안 실행된 대출은 2만5000여 건. 이용자 절반이 40, 50대지만 20대 젊은 대출자의 비중도 10%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소액 생계비 대출은 수십만 원을 구하지 못해서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금융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금융당국은 대출 상담 과정에서 채무 조정이나 복지, 일자리 상담을 함께 받도록 하는 일종의 ‘미끼상품’ 역할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소액 생계비 대출 신청 첫날이었던 3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중앙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한 시민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소액 생계비 대출, 이용자 절반은 40·50대

소액 생계비 대출은 제도권 금융은 물론이고 정책 서민금융의 지원마저 받기 어려워 불법 사금융에 노출되기 쉬운 취약계층에게 신청 당일 최대 100만 원을 즉시 빌려주는 정책 금융상품이다. 대부금융협회는 불법 사금융의 연평균 금리가 414%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본 50만 원, 최대 100만 원의 대출 한도는 이른바 ‘내구제 대출’이 통상 50만∼60만 원 수준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감안해 설정됐다. 내구제 대출은 본인 명의로 휴대전화를 개통하거나 가전제품을 빌린 뒤 대출업자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 일부 현금을 받는 불법 사금융이다.

소액 생계비 대출은 일단 50만 원을 빌린 이후에 이자를 6개월 이상 성실히 납부하면 50만 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대출 금리도 최초에는 연 15.9%지만 서민금융진흥원의 금융 교육을 이수하고 이자를 잘 납부하면 최저 9.4%까지 낮아진다. 또 병원비 등의 자금 용처를 증빙하면 처음부터 100만 원을 빌릴 수 있다.

3월 27일 대출 개시를 닷새 앞두고 진행된 사전 예약 첫날에는 신청자 폭주로 서민금융진흥원 홈페이지가 접속 지연 사태를 빚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던 상황. 대출이 시작된 후에도 이 같은 인기는 이어지고 있다.

19일 국민의힘 최승재 의원실이 서민금융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3월 27일부터 4월 28일까지 5주 동안 총 156억2000만 원의 소액 생계비 대출이 실행됐다. 대출 건수로는 2만5545건, 평균 대출액은 61만 원이었다.

소액 생계비 대출 이용자를 연령대별로 보면 40대가 27.1%였고 50대도 22.9%를 차지해 40, 50대 대출자가 딱 절반인 것으로 분석됐다. 20대 대출자도 11.0%로 나타났다. 성별로 나눠 보면 남성 대출자 62.4%, 여성 대출자 37.6%의 비중이었다.

● 월세 납부, 카드 연체 상환 등의 이유로 대출
금융위원회와 서민금융진흥원은 소액 생계비 대출 이용자의 구체적인 대출 사유를 분류하고 있지는 않다. 생계비 용도라면 사용처를 소명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는 대출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승재 의원실에서 대출 과정에서의 주요 상담 내용을 살펴본 결과 △주거비·생활비 마련 △의료비·학자금 충당 △공과금 및 금융사 연체대금 납부 등이 주요한 대출 목적인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학원을 운영하는 40대 B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학원 운영이 어려워진 뒤 연체한 신용카드 대금을 상환하기 위해 대출 상담 창구를 찾았다. 또 50대 남성 C 씨의 경우 건설현장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다가 최근 줄어든 소득 때문에 생활고를 겪으며 소액 생계비 대출을 신청했다.

희귀병을 앓는 자녀의 입원 비용을 납부하거나 외손자를 양육하면서 연체된 공과금을 내기 위해 상담 창구를 찾은 경우도 있었다. 희귀병 치료비 지원이나 기초생활수급자 대상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현금이 필요한 비용을 제대로 납부하지 못해서 소액 생계비 대출을 받은 사례들이다. 최승재 의원은 “경제적 취약계층이 최근 악화된 경기 상황과 코로나19 여파 등으로 한계 상황까지 내몰리면서 소액 생계비 대출을 신청하는 사례가 다수로 보인다”며 “소액 생계비 대출 확대를 포함해 이들의 어려움 해소와 재기를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채무조정, 복지 상담 위한 ‘미끼상품’ 역할도

소액 생계비 대출 제도를 설계한 금융당국은 금융에 복지를 결합한 실험적인 상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소액 생계비 대출 과정에서 △채무 조정 △복지 연계 △취업 지원 △불법 사금융 신고 등의 복합 상담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재훈 금융위 금융소비자국장은 “소액을 대출 받기 위해 직접 상담 창구를 찾는 것이 불편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오프라인 대면상담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며 “소액 생계비 대출을 ‘미끼상품’처럼 써서라도 상담을 통해 채무 조정과 복지, 일자리 연계 등에 나서는 것이 핵심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로 5주 동안의 소액 생계비 대출 상담 과정에서는 채무 조정 9181건, 복지 연계 4940건, 취업 지원 1768건, 휴면예금 연계 3558건, 불법 사금융 신고 506건, 채무자 대리인 안내 5467건 등 2만5420건(중복 포함)의 복합 상담이 진행된 것으로 집계됐다. 채무가 과중한 경우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채무 조정을 받도록 연결해주고 주거가 불안정한 신청자에게는 지방자치단체와 연계해 임대주택 입주 방법을 안내하는 식이다.

상담 과정에서는 다수의 불법 사금융 피해가 발견되기도 했다. 지난달 소액 생계비 대출을 받은 D 씨는 상담 과정에서 대부업체에서 80만 원을 빌린 뒤 매주 10만 원씩 이자를 갚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 이율 650%에 이르는 초고금리의 불법 사금융을 쓰면서 이자가 며칠만 연체돼도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빚을 독촉하는 불법 추심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D 씨는 100만 원의 소액 생계비 대출을 받으면서 상담을 통해 대한법률구조공단과 금융감독원을 통한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에도 나서게 됐다.

소액 생계비 대출 상담 덕분에 실제 불법 사금융 피해를 가까스로 모면한 경우도 있었다. 이 상담자는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을 빙자해 15%의 선이자를 떼는 사채업자의 대출을 받기 직전에 상담 창구를 찾았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 취약계층임에도 불구하고 합법적인 채무 조정 방법과 각종 복지제도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100명가량의 상담원이 별도의 교육을 받고 투입돼 복지와 일자리 상담 등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인기 높아 재원 추가 확보… ‘지속 가능성’은 과제

은행권과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부터 각각 500억 원을 기부 받아 올해 1000억 원의 소액 생계비 대출의 재원을 확보했던 금융당국은 최근 640억 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기대 이상의 흥행으로 올 9, 10월쯤이면 1000억 원이 모두 소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추가 기부금으로는 금융회사 몫으로 돼 있는 국민행복기금 잉여금이 활용됐다. 금융당국은 금융사 기부금을 활용한 올해와 달리 내년부터는 정부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높은 인기를 감안하면 추가 재원을 통해 제도를 계속 운영할 필요성이 충분히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높은 이자율에도 불구하고 대출 수요가 이렇게 크다는 것은 생계비 문제를 겪는 저신용자가 그만큼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정부가 간접 지원을 통해 금리를 낮추는 역할을 하면서 민간 금융사가 유사한 상품들을 내놓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액 생계비 대출이 ‘복지 혜택’이 아니라 ‘금융 상품’으로 지속 가능하려면 일정한 수준의 상환율이 확보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좋은 취지의 실험임에도 불구하고 상환율이 확보되지 않으면 일종의 복지 제도에 그칠 우려가 있다”며 “기존에 없던 개인 컨설팅이 함께 제공되는 만큼 이를 통해 얼마나 높은 상환율을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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