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오피스빌딩이 비어간다… 대출 물린 은행들 조마조마[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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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1분기 사무실 공실률 19%, 5분기째 상승… 1992년이후 최고
워싱턴-LA서 투자사들 빚 못갚아
‘다음 금융위기의 진원지’ 관측
“중산층용 주택으로 개조” 주장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777타워. 소유주인 브룩필드는 2월 이 빌딩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고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777타워. 소유주인 브룩필드는 2월 이 빌딩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고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도심 대형 오피스빌딩이 임차인을 구하지 못해 텅 비어간다. 유명 부동산 투자회사들이 오피스타워를 담보로 받은 대출을 제때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에 빠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당시 이야기가 아니다. 2023년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사무실의 종말’이 다가오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다음 위기의 진원지가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 임차인 못 구하는 오피스빌딩

세계 최대 부동산 투자회사인 브룩필드는 이달 중순 12개 워싱턴 주변 사무실 건물의 담보대출(1억6140만 달러) 원리금 상환에 실패했다. 2월 로스앤젤레스 오피스타워 담보대출(7억8400만 달러) 채무불이행에 이어 두 번째다.

글로벌 채권운용사 핌코 산하의 컬럼비아프로퍼티트러스트는 2월 17억 달러 담보대출의 이자를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에 빠졌다. 샌프란시스코, 뉴욕, 보스턴 등에 있는 7개 사무실 건물이 담보였다.

잇따른 채무불이행 배경엔 금리 인상이 있다. 사무실 담보대출은 주로 변동금리다. 컬럼비아프로퍼티의 경우 2021년 말 3%이던 대출금리가 올해 초 6%까지 뛰었다.

더 큰 이유는 사무실이 텅 비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무실 수요 감소로 임차인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공실이 갈수록 늘어간다. 무디스애널리틱스에 따르면 1분기(1∼3월) 미국 사무실 공실률은 19.0%에 달한다. 5개 분기 연속 올랐고, 1992년 이후 최고치다. 부동산 가격 급락이 촉발한 저축대부조합(S&L) 위기 당시 공실률 기록(1991년 19.3%)에 가까워졌다. 공실률 상승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부동산 분석회사 그린스트리트에 따르면 미국 사무실의 부동산 가치는 1년 전보다 25%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원격근무로 사무실이 비었다

미국 기업은 예전만큼 사무실 공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보안업체 캐슬시스템스가 출입증 데이터로 파악한 지난주 미국 10대 도시 사무실 점유율은 49.6%에 그쳤다. 사무실 자리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직전엔 이 수치가 100%에 육박했다.

이는 원격근무가 늘어서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2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원격근무가 가능한 직업의 근로자 중 35%는 항상 집에서 일한다. 주 2, 3일만 출근하는 하이브리드 근무자도 41%에 달한다.

미국에서 원격근무가 대세인 건 유독 뜨거운 고용시장 영향 때문이다. 신용석 미국 워싱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구인난 때문에 미국 기업은 채용을 위해 재택근무나 하이브리드 근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집이 넓은 것도 재택근무가 자리 잡은 이유로 꼽힌다. 미국의 1인당 주거면적(2020년 기준 65㎡)은 한국(33.9㎡)의 1.9배이다.

● 소형은행 부실로 이어지나

사무실이 비어서 생기는 문제는 적지 않다. 무엇보다 부실이 은행으로 번질 수 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부동산 부채 4조5000억 달러 중 3분의 1은 2025년 말 이전에 만기가 돌아온다. 리사 살럿 모건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는 “새 대출금리는 기존보다 3.5∼4.5%포인트 높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금처럼 사무실 공실률이 치솟고 가치가 떨어진다면 사무실 부동산 투자자들이 줄줄이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그 충격은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70%를 보유한 소규모 지역은행에 집중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금융안정성 보고서에서 “높은 금리와 구조적 수요 감소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광범위하게 조정될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다.

사무실이 비면서 도심 유동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상권이 위축돼 자영업자와 소기업의 손해로 이어진다. 니컬러스 블룸 스탠퍼드대 교수에 따르면 뉴욕 직장인이 2019년보다 30% 덜 출근해서 생긴 소비 감소분은 연간 124억 달러나 된다. 사무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재산세 수입 감소도 불가피하다.

‘사무실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면 도심을 살릴 방법은 무엇일까. 낡은 오피스빌딩을 아파트로 개조하는 것이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된다. 부동산 회사 라이스너그룹의 레미 라이스너 대표는 포브스 기고문에서 “오피스타워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며 “중산층을 위한 주택으로 전환해 오피스 밀집지역을 주거지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오피스빌딩#사무실 공실률#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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