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경고에도…기준금리 밑도는 단기 금리 왜?

  • 뉴시스
  • 입력 2023년 4월 18일 14시 22분


코멘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연내 금리 인하에 베팅하면서, 1년 미만 단기 채권 금리가 기준금리(3.5%)를 밑도는 금리 역전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채권 시장 전문가들은 조달금리가 채권 금리 보다 낮은 수준인 ‘역(逆)캐리’ 기조가 앞으로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년 미만 단기 채권 금리가 기준금리인 3.5%를 하회하고 있다. 91일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전날 3.43%에 마감했다. CD 91일물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한 지난 11일부터 5거래일 연속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다. 통안증권 91일물과 국채 1년물은 각각 지난달 13일 각각 3.489%, 3.484%로 기준금리 아래로 내려선 후 한 달 여간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다. 조달비용 보다 수익이 작은 상황이 이어 지고 있는 셈이다.

1년 미만 단기 채권 금리가 기준금리 보다 낮은 것은 시장이 3개월 내에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PF 대출 부실 우려, 경기침체 우려 등으로 앞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하지 않고, 연내 통화정책을 완화할 것이란 기대가 확산되면서 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1년 미만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는 것은 금리 인하 기대감 외에도 수급적인 요인도 존재한다.

외국인들의 재정 차익 거래가 증가하고 있는 점은 단기 금리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SVB 파산 이후 외국인들의 자금은 현물과 선물시장에서 국내 채권으로 대거 유입됐다. 금리인하를 반영하면서 유입되고 있는 선물과 달리 현물시장에 유입된 자금 대부분은 재정차익 거래 수요다. SVB 파산 이후 미 연준의 긴축 우려 완화와 금리인하 기대감이 반영되며 단기물 금리가 빠르게 하락하면서 달러 보유자의 재정차익 거래 요인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 따르면 SVB가 파산한 지난 3월 13일 이후 외국인들이 매수한 채권 14조8000억원인 가운데, 1년 미만 자금이 8조4000억원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채권 시장에 대거 참여하고 있는 점도 1년 미만 채권의 강세 요인으로 이어졌다. 지난해부터 주가는 부진하고 금리는 높아지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채권 투자에 대거 참여하고 있는 가운데, 현물 채권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거래가 편한 채권형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채권형 ETF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단기자금형이다. 현재 국내에 상장된 채권형 ETF 76개 중 19개는 단기 자금형 ETF이다. 지난 13일 기준 채권형 ETF의 잔고 26조1000억원 가운데, 단기자금형은 14조5000억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의 예금 금리 인하로 정기예금이 감소하고 있는 반면, 단기 안전자산인 머니마켓펀드(MMF) 잔고가 늘고 있는 점도 영향을 줬다. 시중 은행들은 올 들어 예금금리를 인하하면서 MMF 자금이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이다. 금투협에 따르면 올해 1분기 MMF 순자산 총액 평균액은 194조7000억원으로 직전 분기(157조8000억원) 보다 늘었다. 지난 2월 6일에는 MMF 순자산 총액이 211조원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MMF에 유입된 대규모 자금은 1년 미만 채권을 매수한 것으로 판단된다.

연내 금리 인하에 베팅한 단기자금 금리 하락에 대해 한은은 불편한 심리를 내비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초단기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는 것에 대해 채권시장의 기대가 과도하다며 경고했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들은 금리 인하를 아직까지는 고려할 단계가 아니고 물가가 충분히 2% 수준으로 수렴되는 지를 보고 결정해야 하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며 “단기금리인 90일 통안채 금리라든지 국채 1년물 금리가 하락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시장이 좀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장이 맞는지 한은이 맞는지, 경기라든지 물가의 흐름에 대해서 누가 더 맞는지는 사후적으로 판단해야 될 것”이라며 “다만 이렇게 가는 것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라는 경고를 할 필요가 있다고 금통위원 몇 분이 말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또 “미국의 단기금리나 국채금리와 기준금리의 차이를 보면 한국보다 두 배 이상은 등 우리 보다 더한 상황”이라며 “시장에서는 피벗(통화정책 선회)을 연준 이상으로 빠르게 예상하고 있고, 이 같은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채권 시장 전문가들은 단기 채권 시장의 역캐리 현상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물가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 둔화 우려,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어 연내 금리 인하 기대가 앞으로도 이어지겠지만,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은 아직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 뿐 아니라 주요국 중앙은행 대부분이 ‘높은 금리를 오래 유지할 것’이라는 기조를 공언하고 있으나 시장의 연말 인하 전망은 바뀌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과거 급작스럽게 바뀌는 중앙은행 입장 변화 경험, 결국에는 경기 침체 대응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통화정책, 중앙은행 스탠스와 무관하게 시장은 꾸준히 연말 인하를 반영해 나가면서, 연내 1회 인하를 반영한 금리 레벨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연내 금리 인하를 반영하면서 하락한 1년 이상 채권 금리의 하락은 과도하다고 판단된다”며 “1년 미만의 채권 금리가 기준금리를 하회하고 있는 것은 수급적인 요인도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은은 4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경기보다는 물가 안정이 최우선 과제라고 언급하면서 물가가 높은 만큼 금리인하 논의는 시기상조라고 언급하는 등 매파적 모습을 보였다”며 “최근 물가는 둔화되고 있지만, 하반기에 전기·가스 요금, 대중교통 요금들 인상이 예정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물가의 둔화 속도가 더딜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금리인하 시점은 연내보다는 내년 1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시장참가자들은 성장경로가 하방 위험이 크다는 의견이 다수이고, 4월 금통위부터 이어진 이 총재의 매파 발언에도 시장은 연내 인하 전망을 유지중”이라며 “1년 이내 통화정책 완화 기대는 기준금리를 3.25%까지 낮출 수 있는 정도의 기대로, 당장 1분기 내 인하가 아니라면 국고 3년물이 3.2%를 하회하는 것은 역캐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