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발되는 예타 면제 사업, 지자체 재정 부담만 늘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4일 11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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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이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런 사업들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재정 부담만 키웠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예타는 정부 재정이 투입되는 대형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을 따지는 제도로, 김대중 정부 때인 1999년 도입됐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건설사업 등은 반드시 예타를 거쳐야만 한다. 다만 지역 균형발전이나 긴급한 경제·사회적 대응 등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예타가 면제된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올해 2월까지 예타 면제 사업 규모가 106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되면서 남발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샀다. 예타가 도입된 이후 100조 원 넘게 면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매년 3차례 발행하는 학술지 ‘입법과 정책’ 최신호에 예타 면제 사업이 실질적으로 지자체에 실익이 있었는지를 분석한 논문 ‘예비 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이 지방자치단체 재정운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논의: 3대 문화권 사업을 중심으로’를 게재했다.

논문은 원광대학교 행정언론학부 박민정 교수(1저자)와 임성실 강사(교신저자)가 작성했다. 또 2008년 국가균형 발전을 목적으로 예타 면제사업으로 선정된 대북경북지역의 3대 문화권 사업 가운데 사업이 끝난 경북 청도군과 문경시의 재정현황 및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분석 결과를 담았다.
● 청도군, 예타 면제 사업 추진 후 재정 자립도 악화
논문에 따르면 경북 청도군의 예타 면제 사업은 신화랑 풍류체험벨트 조성사업이었다. 신라 화랑정신의 발상지인 청도군 운문면 방지리 일대 운문면 방지리 일대 29만7493㎡ 면적에 화랑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 클러스터 단지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는 화랑촌(숙박시설)과 캠핑장, 화랑정신 기념관 등이 조성돼 있다.

‘제 2차 국가 균형 발전위원회’는 2008년 9월 이 사업을 광역경제권 발전을 위한 선도프로젝트로 선정했다. 이어 이듬해인 2009년 11월 기획재정부는 이 사업에 대해 예타 면제 결정을 내렸다.

간이 예타를 통한 경제성 분석 결과에서 이 사업의 비용 대비 편익(B/C)은 0.33에 불과했다. B/C가 1을 넘지 못한다는 것은 비용만큼 편익을 얻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총 사업기간(2012~2018년)에 609억52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이 가운데 국비가 288억6600만 원이었고, 지자체도 230억3000만 원을 썼다.

사업 기간 청도군의 재정자립도는 2012년 13.2%에서 2018년에는 7.69%로 오히려 악화됐다. 개관 첫해인 2018년 방문객은 2만8133명에 머물렀고, 3억 원에 가까운 손실을 냈을 정도다. 또 사업이 추진된 10여 년간 청도군의 재정수입에서 자체수입은 거의 늘지 않았다. 결국 경제성이 낮은 무리한 사업에 지자체 예산을 과도하게 투입한 게 발목을 잡은 셈이다.
● 문경시, 예타 면제 사업으로 수입 ‘0’
문경시의 사업은 녹색성장벨트 조성사업이다. 문경시 가은읍 일대 103만㎡에 논색문화 상생벨트 영상문화 단지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2014년 8월 착공해 2016년 준공될 예정이었지만 30여 차례에 걸친 설계변경 등으로 전체 사업 일정이 늦춰져 2018년 10월 ‘문경 에코랄라’라는 이름으로 개장됐다.

이 사업 역시 예타 결과 B/C가 0.12DP 불과할 정도로 경제성이 낮다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선도사업으로 지정돼 예타를 면제받았고, 1119억2400만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사업비는 국비 611억2800만 원, 문경시 260억 원, 민간투자 245억9800만 원이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문경시의 재정자립도는 2012년 18.05%에서 2019년 10.03%로 뚝 떨어졌다. 이 기간 문경시의 자체수입인 지방세와 세외수입비율도 크게 줄었다.

게다가 문경시는 연간 운영비가 60억 원에 달할 것으로 파악되자 임대료를 한 푼도 받지 않고, 수익권도 포기한 채 민간업체에 넘겨 특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 결과 운영수입은 ‘0원’이었다. 그런데 민간업체에 운영을 넘긴 후에도 매년 5억~17억 원의 운영비를 별도로 지출했다.
● 예타 면제 기준 강화하고, 지자체 운영 능력 사전 검토해야
논문은 이같은 결과를 토대로, 지자체들이 예타 면제사업에 대해 정부로부터 큰 수혜를 받은 것처럼 환영하지만, 정부 보조금의 지원으로 공사가 끝난 이후부터는 지자체에 오히려 재정부담을 주는 사업이 된다고 지적했다. 또 사업이 완공된 후 실제 운영에 있어서 대부분 위탁운영으로 재정수익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결과가 나타난 원인은 사업이 시작할 당시부터 경제성이 낮은 사업을 예타 면제를 통해 균형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 정치적 성과만 앞세울 뿐, 지자체의 재정적 고려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논문은 따라서 예타 면제 기준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촉구했다. 특히 “예타 면제가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모호한 기준에 의해서 결정되면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이라도 추진될 수밖에 없다”며 “정책적 필요성의 내용을 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자단체의 사업 관리 역량 및 운영을 위한 재원 마련에 대한 구체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자체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사업이 완료된 이후에 이 사업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재정적 기반이 마련이 되어 있는지를 사전에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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