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ARM ‘세기의 반도체 합병’ 주요국 견제에 무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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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기술 안보에 세계 촉각, ‘반독점’ 못 넘고 1년반만에 물거품
합병되면 설계-생산 지배적 위치… 반도체 패권 놓고 구글-MS 반발
대규모 M&A 추진중인 삼성전자, “반독점 제재 대비책 준비”

‘세기의 딜’로 불렸던 미국 엔비디아의 영국 ARM 인수합병(M&A)이 발표 1년 반 만에 최종 무산됐다. 표면적으로는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당국의 반독점 규제를 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주요 반도체 생산국들 사이에서 기술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M&A를 둘러싼 각국 정부의 줄다리기도 점차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7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총 660억 달러(약 79조 원) 규모로 예정됐던 엔비디아-ARM 빅딜이 주요국의 반독점 우려 제기로 인해 무산됐다고 보도했다. ARM의 현 대주주인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은 연내 ARM의 기업공개(IPO) 절차에 착수할 것이라고 FT는 전했다.

이번 빅딜 무산은 글로벌 반도체 M&A가 더 이상 시장 논리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걸 재확인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 안보 차원에서 국가별로 치밀한 머리싸움을 펼치고 있고, 그러한 전략 충돌이 시장 논리에 앞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ARM은 글로벌 반도체 설계 1위 기업이다. 삼성전자, 퀄컴, 화웨이 등 전 세계 정보기술(IT) 기업이 쓰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의 95%를 ARM이 설계한다. FT는 “반도체 사상 최대 규모였던 이번 딜이 성사됐다면 엔비디아는 전 세계 모바일 기기의 핵심 기술에 통제권을 가졌을 것”이라고 했다.

ARM을 미국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가 인수할 것이란 발표가 나오자 경쟁사와 고객사들이 일제히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퀄컴 등이 대표적이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패권 전쟁이 이어지면서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가진 특정 기업의 부상에 대한 국가 간, 기업 간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반도체 시장에서 대형 M&A 시도가 경쟁당국 심사로 지연되거나 좌초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는 ‘중국 현지 기업의 시장 진입을 지원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인 후에야 지난해 말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 중국계 와이즈로드캐피털의 국내 매그나칩 인수와 대만 웨이퍼 업체 글로벌웨이퍼스의 독일 실트로닉 인수는 각각 미국과 독일 정부의 반대로 아예 무산됐다.

이번 엔비디아-ARM의 M&A 좌초로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비롯한 핵심 산업 M&A 시장 전반에서 ‘반독점 심사’를 앞세운 주요국 정부의 영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이 EU 당국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국내 업계도 이러한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약 100조 원의 현금을 ‘실탄’으로 보유한 가운데 타깃을 고르는 중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M&A 가능성을 크게 열어놓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스템 반도체 등 미래 산업 분야의 대형 M&A 추진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삼성전자 또한 최근 주요국들의 반독점 규제 움직임은 물론이고 기술 안보 차원에서의 정부 결정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류성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전략팀장은 “주요 당국이 자국 기업들의 논리에 따라 반독점을 명분으로 경쟁 기업 M&A의 심사를 지연하는 등 비관세 장벽처럼 이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며 “수년 내 글로벌 대형 M&A를 준비 중인 국내 주요 기업도 반독점 우려를 명분으로 한 제재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엔비디아#arm#반도체 합병#반독점#물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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