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2법 3개월 ‘명암’…과도기 혼란 언제 끝날까

  • 뉴시스
  • 입력 2020년 10월 31일 06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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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 권리 31년만에 강화됐지만…신규 전세 불안
"분쟁 부추기는 악법" vs "기울어진 운동장, 정상화"
전문가 해법 엇갈려…"수요 분산" vs "정책 신중해야"

개정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이 도입된 지 석 달이 지났지만 전국 전월세 시장이 제도 시행 초기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법 개정 이후 서민층의 주거 안정이 큰 진전을 이뤘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신규 전세시장이 불안해지는 등 역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정부가 조기 제도 안착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성급한 추가 대책이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울 수 있다는 신중론도 지지를 받고 있다.

반면 전세시장에 나타난 혼란과 갈등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임대차 시장에서 세입자의 권리가 31년 만에 확대되는 과정에서 충돌은 불가피하고,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주거권, 큰 진전” vs “임차인 큰 불편 초래”

31일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임대차3법 도입의 가장 긍정적인 측면은 기존 세입자의 주거 안정이 크게 높아졌다는 점이다.

임대차2법은 지난 18대(2008~2012년) 국회 때부터 도입을 추진해왔으나 매번 논의를 마무리 짓지 못해 10년 넘게 끌어오다 이번에 가까스로 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된 지 약 40년 만에, 지난 1989년 최소 계약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확대된지 31년 만에 계약기간이 4년(2+2년)으로 늘고, 전월세 인상 폭을 5%로 제한하는 등 세입자의 권리가 크게 강화된 것이다.

특히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은 최근 몇 년간 하향 안정세를 지속해왔으나 지난해 말부터 불안한 흐름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올 가을철에는 수도권 집값 급등세와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3기 신도시 등에 따른 대기수요 등으로 전셋값이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돼 왔다. 사실상 임대차3법 시행으로 많은 세입자들이 혜택을 보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실에 따르면 주택도시보증공사, 주택금융공사, SGI서울보증의 보증갱신 건수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 결과 9월 서울의 갱신율이 60.4%로 올해 처음으로 60%를 넘어섰다.

이는 1~8월 서울 평균(55%)보다 4.6% 높은 것이다.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으로 계약기간이 만료된 전세 세입자가 전세 계약기간을 추가 연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상 매 이사철 전셋값이 뛸 때마다 가슴 졸이며 추가 전세보증금을 구하거나, 새 전셋집을 알아봐야 했던 기존 세입자들로서는 큰 혜택을 보게 됐다.

다만 아쉬움을 토로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제도 시행 초기 혼란이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개정 임대차법 시행 이후(7월 다섯째 주부터 10월 넷째 주까지) 2.24% 올라, 아파트값 상승률(1.33%)보다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서울에서 시작된 전셋값 급등세는 수도권을 넘어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주 0.22% 올라, 지난 2015년 4월3주(0.23%) 이래 최근 287주(5년6개월)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부에서 우려했던 ‘전세→월세 전환’ 가속화는 아직 특별한 징후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셋값)이 높아 전환이 쉽지 않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다만 일부에서는 서울 등 전세 품귀 현상이 심한 지역에서는 음성적인 반전세 거래가 늘어났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전월세는 매매거래와 달리 신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내년 6월 ‘전월세신고제’ 시행 전까지는 시장 상황은 ‘깜깜이’다.

특히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갈등은 임대차3법 초기 혼란의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힌다.

최근 기존 세입자의 재계약이 늘면서 시장에 유통 매물이 줄고, ‘임대인 우위’의 시장 상황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에 기존보다 보증금을 1억~2억원씩 높게 내놓는 일부 집주인의 ‘배짱 호가’가 출현하고 있지만 전세 매물이 부족해 속수무책으로 전셋값 인상을 감내하고 있다. 반면 일부 세입자들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것을 빌미로 이사비를 요구하는 등 과도한 요구로 빈축을 사고 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장은 “기존 세입자는 이득이지만, 신규 계약자의 경우 임대차3법이 임대인 우위 상황을 강화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오히려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 “정책이 어떤 계층, 연령, 주거 유형에 대해 어떻게 작용할지 분석이 필요했는데, 그런 절차 없이 일괄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시행되다보니 한계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도 “기존 세입자들은 혜택을 받았지만, 기존 세입자는 유통 매물이 줄고 전셋값 상승에 따라 기존에 살던 곳에서 정주 여건이 악화되는 등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면서 “정책이 수급 불균형을 일으키는 면도 있어 수도권 고비용 주거 구조가 고착화되지 않을까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에서 나타난 혼란을 과도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을 굳이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임대차2법 시행 이후 전월세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원래 집주인과 세입자는 그동안 ‘기울어진 운동장’의 관계였다”면서 “이제야 세입자에게도 ‘권리’라는 것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그동안 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시행하고 있던 민간 임대시장 통제 시스템을 우리 사회가 처음 도입한 것으로, 각자의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면서 “대비를 잘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으로 주거 안정성이 높아진 것만큼은 온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시장 혼란 지속 우려 커…해법 마련은 온도차

임대차 시장 혼란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전문가마다 온도차가 있다.

송인호 부장은 “내년 말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고, 박원갑 위원은 “수도권 입주물량이 줄고 있어 2~3년 정도 혼란이 지속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임대차 시장 혼란에 대한 해법도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송인호 부장은 정부가 수요 분산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부장은 “전세 수요를 분산시키려면 서울 거주자를 경기 지역으로 이주시키거나, 매매나 월세로 전환시키는 정책이 불가피하다”면서 “다만 수요자가 당장 주택을 구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월세 세액 공제 확대 등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월세가 ‘나가는 돈’이라는 인식을 전환하려면, 현재 소득, 면적 기준으로 제한하고 있는 월세 세액 공제를 굉장히 완화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원갑 위원은 “정부가 당장 전셋값 안정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서 “일단 주택 시장이 일시적인 충격을 받은 상황이기 때문에 진정이 될 때까지 시장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일단 일차적으로 이번 가을 이사철 전세난은 일단 피크를 지나고 있지만, 내년 겨울 학군 이사철에 2차 고비가 찾아올 수 있다”면서 “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는 세제 개편이나 추가 규제 등은 당분간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도 “임대차 시장에 생긴 문제들이 현재 통계적으로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추가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분쟁조정위원회의 기능을 강화하는 등 어떻게 정책을 연착륙 시킬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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