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궤도서 이탈한 ‘저물가’…낙관론에 빠진 정부

  • 뉴시스
  • 입력 2019년 12월 31일 14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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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 발표…0.4% 상승 그쳐
역대 최저 상승률…0%대는 '외환위기·메르스' 역대 두 차례뿐
전문가 "물가안정목표 2.0%서 '상당히 이탈'…하방압력 지속"
기재부 "내년 1.0% 상승 예상…농산물 가격 안정 노력하겠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965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경기침체 속 저물가 장기화 현상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석유류와 농산물 가격하락, 정부의 복지정책 확대 등이 물가를 끌어내렸지만 소비, 투자, 수출 등이 부진하면서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이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구체적인 처방 대신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지는 않다. 생활물가 안정을 위한 수급·가격 안정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낙관론만 내놓고 있을 뿐이다.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5로 1년 전보다 0.4% 상승하는 데 그쳤다. 1965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상승폭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대에 그친 건 지금까지 두 차례 번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9년(0.8%)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내수가 급격히 위축됐던 2015년(0.7%)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 8월 사상 처음으로 0%를 밑돌면서 ‘디플레이션’(deflation,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해서 하락하며 경제 전반을 위축시키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내년에도 경기 반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내수 부진이 이어진다면 소비자물가의 0%대 상승 흐름이 지속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올 한 해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 하락 등 공급측 하방충격이 전체 물가를 0.36%포인트(p) 끌어내렸고, 무상교육과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 복지정책과 유류세 인하 조치 등 정부 정책요인으로 0.24%p 낮아진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계절적·일시적 요인에 의한 충격을 제거하고 물가의 장기 추세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되는 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근원물가)도 0.9% 상승에 그쳤다. 이는 1999년(0.3%) 이후 최저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및에너지제외지수는 0.7% 상승해 역시 1999년(-0.2%) 이후 가장 낮았다.

디플레이션 우려에 대해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일부 공산품의 출고가 인상 등을 고려하면 내년 물가 상승률은 올해보다는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지금으로선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언급했다.

경제정책 총괄 당국인 기획재정부 역시 이날 같은 입장을 내고 “2020년 소비자물가는 농산물·석유류 가격 상승 등으로 2019년보다 높은 1.0% 상승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수요측면에서 부진을 초저물가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특히 한국은행의 중기 물가안정목표(2.0%)보다는 1.6%p 낮다는 점에서 현재 상황이 ‘심각한 궤도 이탈’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성장률을 비롯한 실물지표가 상당히 악화된 상태서 나온 저물가이기 때문에 사실상 디플레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12월만 놓고 보면 상승률이 0.7%로 연간 수치보다는 낫긴 하나 여전히 물가안정 목표와 상당히 괴리가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내년 물가는 올해 초저물가에 따른 기저효과가 발생하고 농산물·석유류 가격 하락 요인이 사라지면 일정 부분 상승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올해 내내 이어진 추세적인 하락 흐름이 단기간 내 사라지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내년에 상승하더라도 물가안정 목표를 하회하는 것으로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정말 일본식 디플레이션의 모습을 닮아갈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KDI는 내년 물가상승률로 0.6%를 전망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의 저물가는 경기가 침체되고 성장률이 둔화되는 등 수요 부족 요인이 가장 크다”며 “정책당국이 소비와 투자에 있어서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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