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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나라를 새로 건설하자”… 성장기반 닦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입력 2019-12-16 03:00업데이트 2019-12-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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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 100년, 퀀텀점프의 순간들]
<4> 한국경제 흔든 위기와 기회
# 1962년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주무 부처는 경제기획원(EPB)이었지만 초반 설계 작업은 건설부가 맡았다. 당시 박정희 군사혁명위원회 부의장이 ‘나라를 적극 건설하자’는 취지의 부처를 임시로 만들어 초기 계획을 짜도록 한 것. ‘한강의 기적’ 이면에는 경제의 틀 자체를 바꾸려 했던 ‘큰 정부’가 있었다.

# 1997년 한국은행 핵심 부서에서 근무했던 A 씨는 외환위기 전까지 정책 및 통화당국이 안이하게 대응한 측면이 있었고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협의도 잘 몰랐다고 했다. A 씨는 “당시 한국 경제는 여러모로 실력이 부족했다”고 했다. 위기를 계기로 경제의 민낯이 드러난 셈이다.

경제 자문위원 30명은 기업 100년사에 영향을 준 대표 정책으로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꼽고, 최대 사건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들었다. 나라를 새로 건설하려 한 전면적 속도전 덕에 고도성장을 이뤘지만 무리한 차입과 선단식 경영으로 부실이 누적돼 위기를 초래한 과정이 한국 기업의 부침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 민간자본 대신한 ‘큰 정부’의 시장 개입

기간산업 확충을 목표로 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66년)부터 안정적 성장기반 정착을 목표로 한 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82∼86년)까지 경제의 주도권은 정부가 쥐고 있었다. 신흥독립국 개발이 붐을 이룬 ‘개발 연대’에 한국이 최대 성공사례가 된 것은 정부의 개입이 적지 않은 효과를 냈기 때문이다.

정부의 ‘보이는 손’이 시장에 개입한 또 다른 사례가 1972년 8·3 사채동결 조치다. 재산권을 침해한 조치라는 비판이 있지만 그 덕에 기업의 부도를 막고 경제성장률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었다.

1973년 중화학공업 추진 선언으로 한국 경제에 관치(官治) 경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공업의 한계와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 극복, 자주국방을 위해서라면 중화학공업 육성이 필수적이라는 정권의 판단이 있었다. 과잉투자와 비효율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 있는 반면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부문의 경쟁력을 키웠다는 평가도 많다. 양현봉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간에 자본이 없고 기업가의 의지도 부족한 초창기 정부의 개입이 산업화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 정책, 퀀텀점프의 동력


한국 기업이 퀀텀 점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대중적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 안목으로 정책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1970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는 사업 시작 전 여론의 압도적인 반대에 부딪혔다. 전문가집단은 고속도로를 이용할 여객과 화물이 별로 없을 것으로 봤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서독의 아우토반을 보고 경부고속도로가 물류 혁신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도로는 국내 지역 간 교류를 늘려 성장과 고용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2012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반대여론을 설득하고 대국민 홍보에 나선 덕이다. “개방하고 교류했던 나라는 망한 나라도 있고 흥한 나라도 있지만, 개방 않고 교류하지 않은 나라 중에는 흥한 나라가 없다.”(노무현 전 대통령, 2006년 6월 포털 관계자 오찬간담회서)

경제에 부정적이라는 반대를 무릅쓰고 1993년 전격적으로 실시한 금융실명제는 한국 사회의 투명성을 한 단계 높인 계기였다. 민감한 이슈와 관련해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돌파구를 마련하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 한국 경제 민낯 드러낸 위기

1997년 외환위기로 한국 경제의 문제점이 노출됐다. 동남아시아에서 위기의 쓰나미가 몰려들면서 한국 대기업집단의 차입경영과 지배구조의 한계가 노출됐고, 그 과정에서 거시금융정책의 한계가 드러났다. 정부는 금융 기업 노동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시장경제가 제 역할을 하도록 구조조정했다. 부실 금융기관 정리와 재벌 간 빅딜 등 성과를 냈지만 노동 유연성과 공공 부문의 효율성이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점에서 미완의 개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외환위기 이후 9년 만에 닥친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한국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은 것은 국내에 외국인 비중이 과도하게 높았기 때문이다. 미국발 신용경색의 파도가 국내로 밀려들면서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한국을 빠져나갔다. 이때부터 대외리스크 관리는 경제정책의 핵심 축이 됐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정부는 기업의 애로를 해소하고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지원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봤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는 “정부 개입으로 시장기능이 위축되거나 산업발전이 더디게 진행되면 국제 경쟁의 대열에서 뒤처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 / 황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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