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없는데 규제만 한다”…4중고에 우는 철강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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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6월 6일 0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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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무역주의, 원자재가 인상, 전방산업 부진
최근 환경 이슈 제기되면서 손해 예상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사진제공=포항제철소© News1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사진제공=포항제철소© News1

“대안이 없는 상황인데 규제를 한다고 하니 방법이 없어요. 가뜩이나 어려운데 안 좋은 상황만 늘어납니다.”

지난 4일 열린 ‘철의 날’ 행사에서 한자리에 모인 철강인들은 최근 현대제철이 지자체로부터 부과받은 행정처분에 대해 불만 섞인 목소리를 털어놓았다. 최근 충청남도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가 용광로(고로)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안전밸브를 열어 오염물질을 저감 조치 없이 배출했다는 이유로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내렸다.

지자체의 처분에 대해 철강업계는 현재까지 해당 과정에 저감장치를 설치한 선례가 없으며 관련 기술도 없는 상황이라 당장 생산을 멈추라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업정지로 용광로가 멈추게 되면 보수작업을 거쳐 작업을 재개하는 사이 막대한 비용이 발생해 손실도 크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6일 철강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 업체들은 2017년부터 계속되어온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의 여파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원자재가 인상, 철강 수요 산업 불황이 겹치면서 3중고(三重苦)를 겪어왔다. 여기에 더해 최근 논의되는 환경규제 움직임에 철강업계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철강업계의 어려움은 경영성과인 실적에서 이미 드러났다. 1분기 주요 철강사들은 지난해 같은 분기 대비 저조한 실적을 올렸다. 포스코의 1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조2029억원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분기 1조4877억원 대비 19%가 감소했다. 현대제철도 같은 기간 영업이익이 27.6% 줄어든 2124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국내 주요 제철사인 두 회사 모두 1분기 매출액은 소폭 늘었다. 이에 반해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축소된 것은 올해 초부터 철강 제품의 핵심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 가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제 철광석 가격은 ‘중국 주요항 운임 포함 인도가격’ 기준 지난달 말 1톤당 105달러까지 올랐다. 지난해 11월 65달러 선까지 하락했던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철광석 가격이 100달러를 돌파한 것은 지난 2014년 5월 이후 약 5년 만이다.

철광석 가격 인상에는 ‘자연재해’가 큰 영향을 미쳤다. 올해 초까지 70달러 선에서 머물던 철광석 가격은 1월 브라질 광산업체 ‘발레’가 소유한 페이자오 광산의 광미댐(광물 생산 이후 폐기물을 보관하는 댐)이 붕괴하면서 변동성이 커졌다. 공급 차질이 예상되자 가격이 빠르게 상승한 것이다. 철강업계는 올해 하반기에 이르러야 철광석 가격이 안정화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 뉴스1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전경© 뉴스1

하지만 이런 원자재가 인상을 제품가로 전가하는 문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요 전방산업인 조선, 자동차, 건설, 가전업계가 업황 저조를 이유로 가격 인상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간 불황을 이어온 조선업계는 지속적으로 조선용 후판(厚板·두께 6㎜ 이상 철판)에 대한 가격 동결·인하를 주장해왔다. 선박 건조의 주재료인 후판 가격이 인상될 경우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조선업 전체가 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최근 철강업계와 조선업계 맏형 뻘인 포스코와 현대중공업은 올해 상반기 후판 가격 동결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가 지난해 후판가를 두차례 인상한 것도 올해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

한편, 최근 부산시가 중국 스테인리스 제조업체의 국내 투자를 승인할 계획을 밝힌 일을 두고도 철강업계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세계 최대의 스테인리스 제조사인 중국의 청산강철은 최근 국내 길상스틸과 지분 50:50으로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하고 부산시에 투자의향서를 제출했다. 합작법인은 부산 미음공단에 연산 60만톤 규모의 스테인리스 냉연강판 생산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부산시의 결정에 대해 국내 철강업계는 값싼 중국산 제품이 시장이 풀리면 포화상태인 국내 업계가 고사할 수 있으며 한국이 중국업체의 우회 수출처가 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이에 부산시는 현재도 국내 중소업체가 중국산 스테인리스를 수입하고 있으며 국내 공급사들이 가격을 낮추지 않고 있어 중소업체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명했다.

현 상황에 대해서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현재 겹쳐있는 문제들이 철강업체가 스스로 잘못했다기보다는 주변 환경 변화, 지자체 등의 판단에 영향을 받는 일이라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또 다른 관계자는 환경 규제와 중국 자본 유치를 추진하는 정부 당국과 지자체에 대한 안타까운 입장을 밝혔다. 이 관계자는 “철강은 ‘산업의 쌀’로 불릴 만큼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 이 업(業)을 잘 모르는 부처와 지자체가 너무 근시안적인 판단을 하는 것 같다”며 “산업 전체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들을 판단한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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