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이번 달 ‘초저가 공세’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이마트 자체 패션 브랜드 데이지는 약 350품목을 최대 30% 할인·판매하고 있다. 물량 기준으로 160억원에 달하는 할인 행사다. 올여름 남성 패션 유행 상품으로 꼽히는 폴로셔츠를 대표 상품으로 내놨다. 이 상품의 할인가는 1만5900원에 불과하다.
지난 16일에는 대규모 와인 할인 행사를 시작했다. 전국 이마트 142개점에서 와인 1000여 품목·70여만병을 최대 90% 할인·판매하는 행사다. 대표 상품인 ‘2% 스위트 화이트’ 가격은 ‘단돈’ 5000원이다. 어린이날인 5일에는 9만9000원짜리 ‘비데’를 선보였다. 상품명은 ‘일렉트로맨 에어버블 99 비데(Bidet)’이다. 사용 빈도가 낮은 기능을 덜어내는 대신 상품 본래 기능을 강화해 가격을 대폭 낮춘 제품이다.
이마트의 이 같은 행보는 올해 초부터 예고됐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아직 미지의 영역인 초저가 시장에서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저가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을 지배하는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의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올해 경략전략회의 등에서 “모든 제품을 상식 이하 가격에 팔아라” “이마트만의 초저가 구조를 확립하라”고 이마트 임원에게 주문한 것으로 알렸다.
이마트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이마트를 둘러싼 상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임원이 바로 정용진 부회장”이라며 “초저가 전략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의 약진에 따른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커머스 업체들은 매일 같이 ‘특가 상품’을 선보이며 오프라인 마트의 기존 고객들을 빼앗고 있다.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연간 거래량 기준으로 100조원대에 달한다. 식품·패션·화장품 등 유통 전반에 걸쳐 대세가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정 부회장이 임원들에게 “온라인 가격보다 더 저렴하게 판매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배경이다. 오프라인 매장의 위기 돌파 전략으로 ‘가격’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유통의 본질은 ‘저가’에 있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상황이 그만큼 만만치 않기도 하다. 이마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20% 이상 줄어들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도 전년 같은 기간 1535억원에서 743억원으로 반토막났다. 시장에서는 ‘어닝 쇼크’(시장 예상치보다 저조한 실적)라는 우려 섞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마트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유통채널 대세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격하고 이동하고 있지만 일부 이마트 임원은 오프라인 마트가 활성화하던 시절의 경영 인식에 머물러 있다”며 “정 부회장의 초저가 전략에는 ‘변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지난 3월 개점한 월계점을 포함한 총 16개 트레이더스를 운영하고 있다. 트레이더스 매장의 올해 전체 매출은 지난해보다 25% 증가한 2조4000억원으로 전망된다. 이마트는 오는 2022년까지 트레이더스 점포 수를 28개까지 확대해 매출 4조원을 실현하겠다는 계획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도 기존 오프라인 매장인 이마트보다 전방위적인 할인을 단행하는 ‘트데이더스’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수익성 낮은 이마트 점포를 매각하거나 ‘트레이더스’로 전환하는 작업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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