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4번째 한국 방문이에요. 쇼핑도 좋아하고 한국 문화도 좋아해요. 박형식이 나오는 한국 뮤지컬 엘리자벳은 서울이랑 부산에서 4번 봤어요”
골든위크를 맞아 엄마와 한국에 방문했다는 일본인 관광객 하루나씨(24)의 말이다. 2일 한국에 도착한 그는 벌써 신발 4개와 티셔츠 2개를 구입했다. 하루나는 “한국에서 파는 물건들은 싸면서도 이쁘고 색상이 다양하다”고 말했다.
2일 오후 기자가 찾은 서울의 대표 관광명소 명동은 일본 관광객들도 북적였다. 특히 일본 골든위크가 올해는 최장 10일에 달하고 제3차 한류붐, ‘네오(NEO) 한류’에 한국을 찾은 일본 관광객들이 크게 늘었다. 여기에 ‘헤이세이’가 끝나면서 일본에서는 연말 같은 분위기가 형성돼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이 증가했다.
이날 오전 7시30분. 서울 중구 무교동에서 북엇국을 파는 식당 앞에는 10여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해장국집이어서 점심 시간에는 길게 줄을 서는 풍경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침에 줄을 서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종업원 역시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고 귀뜸했다. 실제 가게 안에는 일본 관광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관광객들로 거리가 북적였지만 명동 상인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명동 상인들은 ’일본 관광객들은 늘었으나 소비는 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들어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 수는 매월 증가했다. 올해 1~3월 동안 한국을 찾은 일본인 입국자 수는 총 79만여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6% 늘었다.
특히 일본인 여성과 20~30대의 방문이 두드러졌다. 같은 기간 일본인 여성(승무원 제외) 입국자 수는 37% 증가했다. 일본인 10대와 20대 입국자 수는 각각 43%, 20대는 36% 늘었다. K팝 등 네오 한류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명동에서 K팝 아이돌 관련 상품(Goods)를 파는 서진호씨(가명·54)는 ”기대하면 실망이 크니까 기대를 못 하겠다“고 운을 뗐다. 그는 ”최근 일본 관광객들의 한국 여행 트렌드가 쇼핑에서 공연 위주로 바뀌었다“며 ”여행사들도 그렇게 여행상품을 구성하고 있다“고 귀뜸했다.
실제 명동에서 만난 일본인 관광객 다수가 20대 여성이었고 K팝의 영향을 받아 한국 관광을 오게 됐다고 말했다. 친구와 함께 여행 온 이카(23)는 ”한국 문화를 좋아해서 한국에 왔다“며 ”블락비의 팬“이라고 밝혔다. 그는 명동의 한 신발 가게에서 신발을 구경하고 신어봤지만 구매를 망설이다 가게를 떠났다.
하야나(23) 역시 또래 동성친구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 화장품과 한국 음악을 좋아한다“며 ”특히 트와이스가 좋다“고 말했다. 그는 로드숍 브랜드 홀리카홀리카에서 틴트 3개를 사서 나오는 참이었다. 그는 SNS로 미리 알아둔 인기 커피숍을 찾아갔다.
일본인 단골이 많은 소공동의 한 가방가게 주인 서창동씨(가명·51)는 ”일본인 관광객은 확실히 늘었지만 한국처럼 일본인들도 매장에서 가방을 구경하고 온라인에서 비슷한 상품을 찾아 구매한다“며 ”기자님도 그렇게 쇼핑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이어 연령대의 변화와 엔저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구매력이 있는 40~50대 관광객이 많아야 물건을 많이 사는데 최근에는 10~20대 관광객이 많아져 소비를 않는다“며 ”10년 전 일본인 관광객이 많았을 때는 1만엔에 15만원이었는데 최근 엔저로 1만엔의 가치가 10만원 수준으로 떨어져 일본인 관광객의 소비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명동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강선호씨(가명·33)는 ”일본인 관광객도 늘고 매출도 약간 늘었지만 계속 경기침체가 이어져 명동 상인들의 활력이 떨어진 느낌“이라며 ”게다가 명동은 판매품목이 10년 전과 똑같고 콘텐츠가 없어 관광객들이 홍대 등 다른 상권으로 많이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동에서 떡볶이 등 분식을 판매하는 김영수씨(가명·52)는 ”일본인 관광객은 많이 늘었지만 매출 증가를 기대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면서도 ”요즘에는 동남아시아 등 관광객(의 국적)이 다양해 지면서 굳이 옛날처럼 중국과 일본 관광객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보탰다.
호텔과 면세점 업계는 기대에 부푼 모습이다. 지난해 한일 관계가 유독 나빴던 탓에 일본인 관광객 시장이 많이 침체했지만 최근 네오한류의 영향을 받아 반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인들은 명품을 좋아하고 중국인 관광객과 달리 서울 도심 호텔을 선호한다.
롯데면세점은 올해 골든위크 기간 발생한 일본인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50% 늘었다고 밝혔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환율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대대적인 할인 프로모션으로 환율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호텔서울의 5월 1~6일 평균 객실점유율은 80% 후반대로 전년 동기 대비 약 10%포인트(P) 상승했다. 롯데호텔서울 측은 어린이날 연휴, 중국 노동절, 일본 골든위크로 인한 특수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텔 업계 관계자는 ”한국 어린이날, 중국 노동절, 골든위크이 겹쳐 이용객들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특히 방탄소년단(BTS), 트와이스 등 국내 아이돌이 일본에서 ’제3의 한류‘를 일으키고 있어 골든위크 특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한국관광문화연구원 관계자는 ”(일본인) 여성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는 것은 한류와 관련해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일본인은 중국 관광객에 비해 명동 등 도심 호텔을 선호하고 있어 일본 관광객이 늘어난 것은 명동같은 관광상권에 긍정적인 신호“라고 진단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