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화폐단위 변경’ 논쟁…1000원이 1원 된다면?

  • 뉴시스
  • 입력 2019년 3월 30일 1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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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노미네이션, 경제·금융거래 규모 커지면서 부각
아직 '신중론' 우세…"비용 많이 들고 물가에도 압력"

잊을 만 하면 나오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화폐액면단위 변경)’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논의할 때가 됐다”며 필요성을 언급하고 나서부터다.

리디노미네이션은 화폐의 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가를 동일한 비율의 낮은 숫자로 변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원화의 액면단위를 1000대 1로 낮춘다고 하면 10,000원을 10원으로 1,000원을 1원으로 바뀌는 식이다. 값이 낮아지는 것으로 헷갈릴 수 있는데 숫자만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마지막으로 화폐개혁이 이뤄진 것은 1962년 박정희 정권 시절이다. 당시 지하자금 양성화를 위한 목적으로 ‘환’을 ‘원’으로 바꾸고 화폐 액면단위를 10대 1로 절하하는 개혁을 실시했다. 이후 57년간 현재의 화폐 단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경제와 금융거래 규모가 커지면서 액면변경의 필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가령 1조원을 숫자로 표기하려면 ‘1’뒤에 ‘0’을 12개를 붙여야 한다. 숫자 단위가 커 계산과 거래, 회계 처리 등에 불편함이 따를 수 밖에 없다보니 편의성 측면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다.

이미 일상 생활에서는 ‘0’을 빼놓고 쓰는 경우를 볼 때가 종종 있다. 식당이나 커피숍 등에서 메뉴판에 2만원을 ‘20’, 1만5000원을 ‘15’라고 적어놓거나 4500원을 ‘4.5’로 줄여 표기하기도 한다. 0이 빠져있더라도 단위를 인식하는 데에 큰 지장은 없긴 하다.

원화의 대외 위상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도 리디노미네이션이 거론되고 있다. 미 달러당 각국의 환율을 비교해보면 원화 단위는 상당히 크다. 가까운 일본과 중국만 보더라도 1달러당 엔화는 110.78엔, 위안화는 6.78위안으로 원화(1137.0원)보다 화폐 단위의 자릿수가 적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신흥국이 아닌데 1달러당 환율이 네 자릿수인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지금껏 공론화 과정이 제대로 이뤄진 적은 없다. 워낙 반대 논리도 만만치 않은 민감한 이슈여서 한 때 떠올랐다가도 금새 사그라들었다. 그나마 논의가 불붙었을 때도 지금으로부터 약 17년 전인 2002년도다. 박승 전 한은 총재가 전담팀을 꾸린 뒤 1년간 연구를 통해 10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내용의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했으나 정부의 반대로 성사시키지 못했다. 지금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단골 질문’으로만 등장하는 상황이다.

여론도 아직은 내켜하지 않는 분위기다. 화폐 단위를 변경하게 되면 물가가 불안정해지는 등 위험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 주체들의 막연한 불안감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럴 경우 소비가 위축되고 실물자산 투자가 늘어 부동산 값이 뛸 우려도 생긴다. 새로운 화폐를 만들거나 시스템과 프로그램 등을 교체하는 데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는 점도 부담이 된다.

전문가들은 ‘시기상조’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여러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데다 물가에도 압력을 줄 수 있는 게 사실”이라며 “지금 상황이 국민이 불필요한 비용을 지급하면서 리디노미네이션을 해야 할 만큼 절박한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금 문제는 경기인데 리디노미네이션으로 활성화시킬 방안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해야 할 명확한 명분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는 논의가 지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을 논의할 때가 됐다”면서 “장점 못지않게 단점도 뒤따르기 때문에 논의를 하더라도 조심스럽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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