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긴자에 위치한 쌀가게 아코메야에 들어서면 갓 지어낸 밥 냄새가 솔솔 풍긴다. 매장 내 식당에서 여덟 가지 반찬을 담은 ‘오늘의 정식’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반찬 하나하나가 개성 있게 맛깔 나는 것은 물론이고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쌀밥이 입안에서 미끄러지듯 사라진다. 잘 차려진 한 상을 대접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한 끼에 2000엔, 한화로 2만 원 정도 하는 돈이 아깝지 않다.
식당도 있기는 하지만 원래 아코메야는 쌀가게다. 매장 안에서 쌀을 고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시히카리가 비싼 품종이라는 건 필자도 알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니가타현에서 재배된 것이 더 비싸고 또 그중에서도 우오누마라는 지역에서 생산된 것이 가장 비싸다는 건 이 가게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아코메야에서는 쌀의 차진 정도와 부드러운 정도에 따라 고객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최근 아코메야에는 신상품이 나왔다. 300g 분량으로 포장된 쌀인데 이제까지 가장 작은 사이즈가 400g이었다는 점에서 더 작은 미니 사이즈가 나온 셈이다. 왜 더 작은 분량의 상품을 내놓은 것일까.
곡물의 부피를 재는 단위에 ‘홉’이 있다. 한 끼 분량을 일컫는 단위인데 쌀의 경우 한 홉이 150g 정도다. 그러니까 300g은 두 끼 분량, 즉 2인용 상품이다. 새로 나온 300g짜리 쌀은 행복한 한 끼를 함께 먹자며 건넬 수 있는 선물용에 해당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하룻밤 스쳐 지나가는 사랑이 아니라 평생의 사랑, 함께 밥을 지어먹고 싶은 사랑이다’라는 메시지를 담은 선물인 셈이다.
아코메야는 스즈키 리쿠조라는 사람이 만들었다. 1943년생인 그는 고등학교 때 취미가 요트 타기일 정도로 취향이 남달랐다. 20대의 대부분을 유럽에서 어슬렁거리며 보냈는데 이때 그는 일본과 유럽의 격차를 몸소 느끼면서 유럽의 어느 제품, 어느 브랜드를 갖고 들어가면 성공할 수 있을지 보는 안목을 키웠다.
1972년 ‘사자비’라는 회사를 세우고 1981년 영국식 홍차와 관련 상품을 파는 사업을 시작했으며 1995년 스타벅스, 2013년 플라잉타이거, 2015년 쉐이크쉑 등 다양한 해외 브랜드를 들여왔다. 특히 스타벅스를 일본에 들여오면서 회사는 급상승세를 탄다. 당시 내부 경영진 사이에는 “저렇게 비싼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다니겠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스즈키는 “로고가 멋있잖아? 저 정도라면 사람들이 저 커피잔을 들고 다니는 것을 하나의 패션으로 생각할 거야”라고 생각했고 그의 확신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는 성공의 요인으로 ‘반보 앞선 라이프스타일 제안’을 꼽는다. 소비자의 취향을 따라가기보다는 소비자에게 ‘이런 생활양식 어때?’라며 끌어당기는 전략이다. 이때 제안하는 생활방식이 너무 앞서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새로우면서도 따라갈 만한 정도여야 하는데 한 발자국이 아닌 반 발자국이 딱 그 정도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고객에게 ‘설렘’을 전달할 수 있어야 성공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아코메야도 그 연장선에 있다. 쌀이라는 익숙한 품목을 소비하는 방식을 조금 새롭게, 그렇지만 어색하지 않게 제안하는 것이야말로 아코메야의 주 전략이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 nexiz@factory8.org 정리=최한나 기자 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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