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통한 정규직화’ 모델 제시… 勞勞갈등 고비 넘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7일 03시 00분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합의]

손잡은 사측-비정규직 노조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오른쪽)과 박대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장이 26일 인천 중구 공항로에 위치한 본사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에 합의한 뒤 두 손을 맞잡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손잡은 사측-비정규직 노조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오른쪽)과 박대성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장이 26일 인천 중구 공항로에 위치한 본사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에 합의한 뒤 두 손을 맞잡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6개월 넘게 접점을 찾지 못했던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비정규직 노조가 26일 극적인 합의를 이룬 데에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 1호 기관으로서 연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크게 작용했다. 정일영 공사 사장은 이날 열린 합의안 서명식에서 “선도적 모범적인 정규직 전환을 위해 전사의 역량을 모두 쏟아 오늘 합의안을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상당수 공공기관이 인천공항의 정규직 전환 상황을 지켜보며 전환 수위와 시기를 조율해온 만큼 이번 합의안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상당한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시금석 마련

이번 정규직 전환 합의의 최대 난제는 공사 직접고용 규모였다. 공사 정규직은 1200여 명이고, 비정규직은 9894명이다. 비정규직의 어떤 분야를 어느 규모나 공사 정규직으로 직고용하느냐를 놓고 공사와 비정규직 노조는 대립해 왔다. 전문기관의 연구 결과도 달랐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은 854명,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4504명을 적절한 직고용 규모로 제시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 노동법학과 주임교수는 “상세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 인천공항공사가 정규직 전환 비율 및 방식을 제시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정규직 전환 과제를 안고 있는 다른 공공기관에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를 통해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분야는 본사 직접고용 △그 외 공항 운영, 시설 유지 관리, 시스템 관리 분야는 자회사 정규직 △민간 부문의 높은 전문성과 관련 시설 및 장비 활용이 불가피한 업무는 정규직 전환 배제라는 나름의 원칙을 제시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정규직 전환 방식도 핵심 쟁점이었다. 이번 합의에서 직접고용의 경우 관리직은 경쟁 채용으로, 현장직은 면접 및 적격심사로 채용하는 등 직급별 고용 제도를 달리 했다. 자회사 전환 인력은 최소 심사 방식으로 채용한다. 정 사장은 “직접고용의 경우 1차적으로 비정규직 직원들이 제한경쟁을 하고, 탈락 인원으로 발생하는 자리는 공개경쟁 채용을 할 것”이라며 “다만 공개경쟁 채용 과정에서도 인천공항에서의 근무 경력 등을 가점으로 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정규직화 첫발 뗐지만 앞으로도 가시밭길

해를 넘기지 않은 이번 타결이 극적이지만 풀어야 할 과제들도 산적해 있다.

우선 기존 공사 정규직 직원과 정규직 전환 직원 간의 노노(勞勞) 갈등이 가장 큰 고비다. 공사 정규직 노조는 그동안 “비정규직 근로자의 일방적인 정규직 전환은 역차별”이라고 반발해 왔다. 20, 21일 열린 임·단협 투표에서는 조합원 절반 이상이 이런 상황을 사실상 수수방관한 노조 지도부를 불신임하기도 했다.

정규직 노조 측인 한국노총은 이날 “인천공항공사의 일방적인 직접고용 대상 변경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오늘 합의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공사가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직접고용 대상에 보안검색 분야를 추가했다는 주장이다. 이경재 인천공항운영관리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은 “공사가 직접 의뢰한 연구 용역 결과에도 보안검색 분야는 직접고용 대상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고, 23일 열린 제12차 노사정 실무협의에서도 보안검색 분야는 직접고용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며칠 새 갑작스레 말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 사장은 “보안검색 직원이 비정규직이어서 이직률이 높고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특히 많아서 이들을 직접고용 대상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공사 측은 또 “기존 정규직 직원과 직접고용 대상 직원의 수행 업무가 다른 만큼 직군을 분리하고 직급 체계도 다르게 설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 ‘직장 내 차별’ 논란이 불거질 것이란 우려가 적잖다.

이번 조치와 관련해 보수 진영에선 “공공부문의 이 같은 ‘묻지 마 정규직화’가 일자리 고착화를 심화시키고 국가 경쟁력만 떨어뜨릴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자는 “정부는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다 좋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는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일자리의 기득권화를 가져올 뿐”이라고 말했다.

손가인 gain@donga.com·강성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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