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스포츠 주도권’ 빼앗길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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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력 앞세운 中알리바바의 판 흔들기에…
알리스포츠, 2017亞경기 협력사로 개최 여건 나쁜 투르크서 대회 강행
세부 종목도 中에 유리한 게임 포함… 한국협회, 파행운영 항의 불참키로

e스포츠의 종주국으로서 국제화 및 정식 스포츠 등록을 주도해 온 한국이 시장 규모를 앞세운 중국의 독자행보에 밀릴 위기에 처했다.

한국e스포츠협회(KeSPA)는 지난달 말 ‘2017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AIMAG) 파행적 운영과 부적절한 종목 선정에 대한 항의’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이 대회에 불참할 것을 선언했다.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아시아경기와는 별도로 4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대회로, 당구·볼링·댄스스포츠·킥복싱·무에타이(무아이타이)·바둑·체스 등 실내 스포츠와 무술 종목을 겨룬다. 올해 대회는 9월 17일부터 27일까지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시가바트에서 열릴 예정이다.

e스포츠 종목은 2009년과 2013년 실내무도아시아경기대회 종목으로 채택됐지만 OCA가 투르크메니스탄의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이번 대회에서는 e스포츠 종목 개최가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KeSPA 주도로 설립된 e스포츠 정식 국제기구인 국제e스포츠연맹(IeSF)과 KeSPA도 이 결정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OCA는 지난달 중국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알리스포츠가 이번 대회의 e스포츠부문 협력사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KeSPA는 “정식 국제기구인 IeSF를 통해서가 아니라 민간 기업인 알리스포츠와 함께 대회를 준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더 큰 갈등은 세부종목 게임에 도타2, 스타크래프트2, 하스스톤이 선정되면서 불거졌다. 도타2는 실시간 전략게임으로 분류되는데, 이 분야에서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은 리그오브레전드(LOL)다. 현재 세계 최강인 한국의 e스포츠도 LOL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도타2는 중국에서는 어느 정도 인기가 있지만 LOL에는 못 미치는 데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없는 게임이다. KeSPA는 성명을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 포함되지 않은 데다 참가국들의 e스포츠 저변에 대한 특성도 반영되지 않은 게임 선정”이라고 비판했다. 이를 두고 게임업계에서는 알리바바가 LOL 제작사인 라이엇게임스를 견제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라이엇게임스는 알리바바의 경쟁사인 중국 텐센트가 인수했다. 대회 참가 선수 등록도 투르크메니스탄 조직위가 아니라 알리스포츠 홈페이지에서 이뤄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KeSPA는 이를 ‘파행적 운영’으로 규정하고 “한국 선수들이 국가대표로서 자격과 권익을 보장받을 수 없다고 판단해 불참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또 KeSPA는 “이번 일은 국제 e스포츠 사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향후 아시아에서 e스포츠의 아시아경기 진입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OCA는 e스포츠를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아경기에서 시범종목으로 채택했고 2022년 항저우 아시아경기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한국 e스포츠업계는 한국이 e스포츠의 정식 스포츠화를 위해 들였던 노력이 결실을 보기도 전에 중국이 자본력 있는 민간 기업을 앞세워 e스포츠의 주도권을 가져가버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분위기다. 중국은 중화체육총국이 e스포츠를 2003년 99번째 정식종목으로 채택한 반면 한국은 아직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종목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업계는 문재인 대통령이 게임산업에 호의적인 데다 전병헌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직전 KeSPA 회장 출신이라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e스포츠가 산업적으로도 성장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스포츠 외교에서도 e스포츠가 주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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