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제 머리 못깎는’ 산업은행

  • 동아일보

관리자급 행원, 전체의 3분의 1에 달해도…


KDB산업은행에서는 매년 1월과 7월 정기인사 때마다 ‘자리 전쟁’이 벌어진다. 전 직원의 약 3분의 1이 팀장급(3급) 이상 간부 행원인데 보직은 제한적이어서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다 보니 업무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위인설관(爲人設官)식 보직도 생긴다. 한 주니어 행원은 “같은 직급의 선임자가 팀장과 파트장의 직책을 각각 맡고 있어 팀원으로서는 2명의 팀장을 모시는 것처럼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간부급 행원 비중이 커진 산업은행이 ‘항아리형 인력구조’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1990년대 초 대거 뽑은 행원들이 관리자급으로 승진해 중간간부 이상 계층이 두꺼워지고 몸집이 무거워지는 ‘비만형 조직구조’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6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산업은행의 전체 임직원 3153명 중 1급(94명), 2급(371명), 3급(532명) 등 중간관리자급이 997명이다. 간부급 직원이 거의 3분의 1에 이른다. 특히 팀장급 행원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이들 대부분은 1990∼1993년 채용됐다. 평소 매년 50∼70명을 채용해 왔던 산업은행이 경기 호황을 이유로 4년간 매년 150∼200명을 선발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고참 직원이 되면서 보직 경쟁과 인건비 등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시중은행의 일반직원 대비 책임자(4급 이상) 비중에 비해서도 높은 수치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산업은행의 책임자 비중은 57.9%로 KEB하나은행(46.2%)이나 우리은행(53.6%), 신한은행(54.5%)에 비해 높다. 시중은행들이 핀테크(금융기술) 등의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을 통해 몸집 줄이기에 나서면서 이 같은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은 2010년 3200여 명, 2015년 1100여 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다. 그럼에도 책임자 비중이 57.2%로 높게 나타나는 등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행원 비중이 높은 구조가 해소되지 않자 올해 초 약 2800명의 희망퇴직을 확정했다. 국민은행은 퇴직자에게 36개월분의 급여에 해당하는 특별퇴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 역시 2015년 말 188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해 은행을 떠났다. 당시 기업은행은 직전 연도에 받았던 연봉의 260%를 특별퇴직금으로 지급했다. 은행으로선 일시적으로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해야 하는 압박이 상당하지만 추후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으로 희망퇴직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시중은행처럼 희망·명예퇴직 등의 인위적 구조조정을 추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감사원이 특별퇴직금 지급 관행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2014년 감사에서 당시 산업은행이 퇴직자 21명에게 지급한 명예퇴직금 52억4500만 원이 정부지침(20억2400만 원)보다 많다고 지적하며 명예퇴직제도 폐지를 주문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희망·명예퇴직을 통한 인사 적체 해소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시중은행처럼 특별퇴직금을 지급할 수 없다 보니 마땅한 유인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업에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정책금융기관이 정작 자기 조직의 구조조정은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본부장은 “다른 업종보다 근속 연수가 길고 임금 수준이 높아 인사 적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은행권의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산업은행#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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