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생명을 보유한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인 MBK파트너스는 내년 2분기(4∼6월) ING생명의 매각과 증시 상장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최근 전략을 바꿨다. 매각이 여의치 않자 상장 카드까지 꺼낸 것이다. 통상 기업공개(IPO)는 매각에 비해 투자금 회수가 더딘 편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MBK가 ING생명을 인수한 지 3년이 넘었으니 자금 회수를 서둘러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MBK는 보유하고 있는 코웨이 매각을 올해 초 추진하다가 현재 잠정 중단한 상태다.
공격적으로 기업을 사들이던 국내 경영참여형 PEF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보유 기업의 매각 작업이 난항을 겪으며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등 금융시장 환경이 급변하면서 PEF의 주무대인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찬바람만 감돌고 있다.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M&A 시장에서 PEF가 보유한 기업의 ‘바이아웃’(기업 인수 후 매각) 거래의 대부분이 실패했다. M&A 시장에서 대어급으로 꼽히던 로젠택배, 할리스커피 등도 매각 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올해 9월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가 보유한 로젠택배는 영국계 PEF 운용사 CVC캐피털파트너스에 매각을 앞두고 있었으나 본계약 단계에서 이견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이 무산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토종 PEF인 IMM PE는 최근 중국과 대만계 자본에 보유 중인 할리스커피에 대한 인수 의향을 타진했으나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전해졌다.
PEF는 지난해 국내 M&A 시장을 주도했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7월 홈플러스 인수전에서 7조6800억 원을 동원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한 기관투자자들은 앞 다퉈 PEF에 돈을 넣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국내 PEF의 투자 약정액이 처음으로 60조 원을 돌파하는 등 PEF의 몸집은 지속적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올해 들어 바이아웃이 지지부진해지자 PEF 투자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PEF는 연기금 등으로부터 자금을 끌어 모아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한 뒤 구조조정 등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수익을 챙긴다. 바이아웃이 어려워지면 PEF의 ‘성공 방정식’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PEF로부터 기업을 매입할 후보군인 대기업들은 글로벌 경기 불황과 실적 악화로 몸을 사리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넉넉지 않다 보니 M&A에 관심이 없다. 관심을 보여도 인수 가격을 지나치게 낮게 제시한다”고 전했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기업 사냥에 나섰던 중국 자본은 최근 중국 정부의 자금 유출 규제로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금호타이어 매각에서도 중국 회사들이 예상 밖의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PEF에서 PEF로의 매각도 쉽지 않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저금리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자 싼값에 인수금융을 제공했던 은행과 증권사들이 위험 관리로 선회하고 있다. 자금 조달 비용을 높이거나 대출을 자제하고 있다. 국내 연기금 관계자는 “금리가 높아지면 예금으로도 충분한 수익률을 올릴 수 있어 굳이 위험한 PEF에 돈을 빌려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국내 PEF들이 인수한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익률에 대한 욕심을 줄여야 바이아웃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4200억 원에 동원산업에 팔린 동부익스프레스의 경우 대주주였던 KTB PE와 큐캐피털 등 PEF 운용사가 유연하게 가격 협상에 나서 매각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IB업계 관계자는 “PEF가 투자와 매각, 재투자의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서는 바이아웃 성공률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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