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기업도 코스닥 상장 허용…‘테슬라 요건’ 도입 반응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5일 17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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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분기(10~12월)부터 적자 기업도 성장성만 갖췄다면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다. 미국의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가 적자 상태에서도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성장한 것처럼 한국판 테슬라가 코스닥 시장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셈이다.

금융위원회가 5일 적자기업도 성장성이 입증되면 상장을 허용하는 '테슬라 요건' 등이 포함된 '상장·공모제도 개편안'을 내놨다. 개편안에 따르면 적자 상태에 있는 기업도 코스닥 상장이 허용된다. 다만, 주관사가 상장 이후 최대 6개월까지 공모가의 90% 수준의 주가를 보장해야 한다. 주가가 이 밑으로 떨어지면 일반 청약자들이 주관사에 "공모가의 90% 가격으로 주식을 다시 사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환매청구권을 부여해 투자자 안전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현재는 코스닥 시장에서 적자 기업은 상장할 수 없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마련된 이 제도가 벤처기업들이 투자받은 자금을 소진하고 사업화 직전 파산하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 현상'을 부추기는 해묵은 규제라고 지적해왔다. 미국 나스닥의 경우 적자기업도 상장할 수 있다. 미국 전기차회사 테슬라는 2010년 적자 상태에서 상장해 개발 및 생산비용을 조달했다. 올해 6월 말까지 13분기 연속 적자를 냈지만 3일(현지시간) 주가는 213.7달러로 공모가(17달러)의 12배다.

금융위는 적자기업 상장을 허용하면서 '특례상장' 제도를 확대했다. 상장주관사가 성장성이 있다고 추천한 기업은 현재 '기술평가 특례상장 제도'와 같은 재무 기준을 적용해 기업이 자기자본 10억 원 이상, 자본잠식률 10% 미만 요건을 만족하면 된다. 이 경우 일반청약자들은 환매청구권을 6개월간 갖는다.

또 기업이 적자이지만 △시가총액이 500억 원 이상 △직전 연매출이 30억 원 이상 △직전 2년 평균 매출증가율이 20% 이상 등 요건을 모두 만족하면 상장이 가능하다. 이 경우엔 환매청구권이 3개월 보장된다. 이밖에 금융당국은 공모가격을 산정할 때 수요예측 과정 없이 기업과 상장주관사가 협의 하에 정할 수 있는 '단일 가격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개편안이 벤처기업에는 새로운 자금 조달 창구를, 역량 있는 증권사에는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그간 까다로운 이익 요건 때문에 기업들이 재무상태가 가장 좋을 때 코스닥 상장을 해왔다"며 "상장 후에 오히려 경영실적이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는 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테슬라 요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외부 변수로 시황이 급락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의 기업공개(IPO) 담당 임원은 "주가가 내리면 주식을 되사준다는 조건으로 상장을 주관할 증권사가 몇 곳이나 있겠느냐"며 "환매청구권 조건이 붙으면 증권사 내부 심의조차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제도를 활용할 만한 유망한 창업 기업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증권사의 기업공개 담당 임원은 "쿠팡과 배달의 민족이 나스닥 상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처럼, 성장성이 좋은 기업은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해 나스닥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한정연 기자 pres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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