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를 탄 지 20년이 넘었지만, 한국전력 하청업체에서 고압선 수리를 하는 A 씨(46)는 여전히 작업이 두렵다. 전봇대에서 떨어지거나 고압선에 감전되는 크고 작은 사고를 수차례 겪으며 겁이 늘었다. 다치고 아픈 게 두려운 게 아니다. 일감이 끊기거나 사고가 나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를 옥죄고 있다.
A 씨는 “용역업체 직원은 작업하다 다쳐도 대부분 쉬쉬한다”며 “작업 중 사고가 나면 하청업체 점수가 깎여 수주를 못 받게 되는 데다, 작업자도 자격 정지를 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청업체는 한전이 두려워 산업재해가 아닌 공상(公傷)으로 처리한다”며 “발주처인 한전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이런 문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A 씨처럼 공기업의 하청을 받은 업체 직원들이 작업 중 사고를 당하고도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7월부터 예정된 30개 공기업 증원 심의 때 공기업의 비정규직 및 간접고용자 현황을 함께 조사할 계획이라고 22일 밝혔다. 간접고용 비중이 과도하게 높지 않은지, 또 안전과 직결된 핵심 업무를 간접고용으로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살펴보겠다는 게 핵심이다.
이번 조치는 최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비정규직 직원이 스크린도어 보수작업 중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공기업과 외주업체의 불평등 계약 등을 제대로 짚어보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공기업과 하청업체의 불평등 계약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최근 지하철 승강장 공사 하청을 맡긴 시공사에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수수료를 떠넘겼다가 적발돼 제재를 받았다. 한전 대구도시공사 대구도시철도공사 등은 일방적으로 공사 기간을 연장하면서 이에 따른 간접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재하도급업체에 체불한 노임을 원도급사에 떠넘겼다가 적발돼 경고조치를 받았다.
더 큰 문제는 정부가 공공기관의 하청업체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의 자회사나 출자회사로 간 퇴직 임원은 공시하고 있지만, 하청업체로 공공기관 퇴직자들이 얼마나 가 있는지도 베일에 가려 있다. 전문가들은 공기업 자회사뿐 아니라 거래 규모가 큰 하청업체에 대해서도 공시를 의무화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두래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 부문에서 경영 효율성만 강조하다보니 인건비 등 비용 절감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공공성 침해가 심각한 만큼 보완 방안을 고민할 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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