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규 특허청장은 “외국 기업들의 국내 투자를 확대하고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국내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현행 특허무효 심판제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특허청 제공
지난달 11일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산업통상자원부가 주한 일본기업 모임인 서울재팬클럽 회원을 초청해 건의사항을 듣고 투자 확대를 주문했다. 이 자리에서 일본 기업인들은 한국에서 기업 하기 힘든 지식재산 분야의 문제점으로 현행 특허무효 제도를 꼽았다. 이들은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특허권 방어를 하는 데 진을 빼야만 한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국내 특허무효 분쟁은 특허청 특허심판원의 특허심판(1심), 특허법원의 2심, 대법원의 최종심으로 이뤄진다. 무효 청구인들이 융·복합과 첨단을 특징으로 하는 기술적 사안에 대해 기술전문기관인 특허심판원의 판단을 거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그렇다 보니 심판원 단계에서 증거를 충실히 제출하지 않았다가 2심에서 증거들을 쏟아내 분쟁을 길게 끌고 간다.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특허권을 방어하다 문을 닫는다. 일각에서는 일부 대기업 등이 이런 제도적 문제점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고 본다. 최동규 특허청장이 취임 1주년을 맞아 제도 개선에 나섰다.
―현행 특허무효 제도에 어떤 문제점이 있나.
“특허무효 청구인 가운데 새로운 증거를 발견했다며 심판원 단계에서 내지 않았던 증거 자료를 특허법원에 제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에 따라 심판원에서 결론이 날 분쟁이 장기화될 뿐 아니라 심판원 판단이 특허법원에서 절반 가까이(2015년 기준 43.4%) 뒤집혀 분쟁 결과를 예측하기가 어렵다. 심판원 단계에 모든 증거 자료를 제출하도록 한 일본은 심판원 판단의 2심 번복 비율이 22.7%(2013년)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최종심까지 다툼의 청구 범위 정정을 허용한 시스템 때문에 막바지에 이른 무효 사건이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부작용 사례가 실제로 심각한가.
“한 정보기술(IT)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심판원 단계에서 무효 증거를 1개만 제시했다가 2심에서 증거 11개를 추가하는 바람에 오랜 소송 끝에 패배했다. 반도체검사 전문업체인 다른 한 중소기업은 미국 대기업의 특허 침해에 맞서 대법원까지 소송을 진행해 무효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대 미국 대기업이 특허무효 청구 범위를 수차례 정정하면서 소송이 6년간 이어져 결국 경영권을 매각당했다.” ―법원 단계에서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거나 다툼의 청구 범위를 변경할 수 있게 허용한 것이 문제란 말인데, 이를 막으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지 않나.
“우리 헌법상 규정이나 법원의 역할로 볼 때 새로운 증거가 제출되면 심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무효 청구인들은 소송을 장기화할 목적으로 2심을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4년 조사에서 2심에 새로운 증거로 제출된 자료의 95%가 특허공보 등에 이미 공개돼 특허심판 단계에서 충분히 제출할 수 있었던 자료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모든 분쟁이 3심 제도를 마련한 취지처럼 신중한 판단을 받아야 하지 않나.
“2심과 최종심의 기능과 역할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특허분쟁의 특수성을 좀 고려해 줬으면 하는 거다. 특허는 보호 기간이 20년이기 때문에 6∼7개월 걸리는 특허심판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최종심까지 2∼6년을 소요하고 나면 설령 승소를 하더라도 의미가 없다. 관할 집중 재판으로 판결이 빨라지긴 했지만 승소하고도 손해배상 소송을 더 거쳐야 한다.” ―소위 특허 선진국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미국 일본 중국 등은 심판원 단계에서 모든 무효 증거를 제출토록 하고 특허심판 단계에서 기술적 전문적 판단을 받게 하고 법원은 심판원의 판단을 반영해 판결한다. 미국은 2012년 이런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 소송 비용을 10분의 1로, 분쟁 기간을 절반으로 줄였다. 우리와 법체계가 비슷한 일본은 1976년 최고재판소 판결 이후 심판원에 모든 증거를 제출토록 제한하고 있고 중국도 마찬가지다. 내년에 출범할 유럽 통합특허법원도 모든 증거를 1심에서 제출토록 설계 중이다. 우리도 세계 5대 특허선진국인 만큼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를 확대하고 국내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국제적 기준으로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바꿔 나갈 계획인가.
“원칙적으로는 심판원 단계에서 모든 증거를 제출하고 정정 청구도 여기서만 가능하도록 하는 게 좋다고 본다. 소송의 증거를 심리하는 것은 사법부의 고유권한이므로 심판원 단계에서만 증거를 다룰 순 없다. 다만 법원이 권한을 활용해 2심에 제출된 증거가 과연 심판원 단계에서 낼 수 없었던 자료인지 명확히 해명하도록 의무화하고 그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우면 증거에서 배제하는 조치만 내려도 큰 효과가 있다. 이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5월 말 국제 콘퍼런스를 열었다. 소송 제도 개선을 수반하는 문제인 만큼 사법부와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가겠다. 기업체의 의견 수렴을 거쳐 10월 말 국회에 개선 법률안을 상정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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