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무에 스토리 입혀 키우니… 고객감동이 주렁주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4일 03시 00분


어룡농원 이상열 대표의 감성농장

이상열 어룡농원 대표가 회원들에게 분양한 배나무를 소개하고 있다. 회원들은 배나무를 키우면서 배 농장에서 파티와 캠핑을 즐기기도 
한다. 이 대표는 “농업에서도 과거처럼 재배와 수확에만 머무르는 방식이 아니라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다양하게 활용하는 전략을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안=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상열 어룡농원 대표가 회원들에게 분양한 배나무를 소개하고 있다. 회원들은 배나무를 키우면서 배 농장에서 파티와 캠핑을 즐기기도 한다. 이 대표는 “농업에서도 과거처럼 재배와 수확에만 머무르는 방식이 아니라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다양하게 활용하는 전략을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안=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자두만 한 연두색 배들이 주렁주렁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특이한 것은 나무마다 어깨 너비의 이름표가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이름표에는 ‘봉천초교 12회 동창회’ 같은 단체 이름 등이 적혀 있었다. 사진이 걸린 나무도 보였다. 연인이 둘의 이름을 적고 사랑을 언약한 나무도 있었다. 자녀나 손자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이름표도 많았다. ‘아내 말을 잘 듣자’는 다짐을 새긴 이름표에 이르렀을 때 웃음이 났다.

9일 찾은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의 배 농장 어룡농원은 이처럼 다른 배 농장과 풍경이 많이 달랐다. 이름표를 단 배나무들은 이상열 어룡농원 대표(48)가 2013년부터 일반인들에게 분양한 것이다. 총 1300그루 가운데 200그루가 분양됐다. 분양 비용은 나무 1그루당 1년에 35만 원이다.

어룡농원 배나무를 분양받은 회원들은 해당 나무에서 열리는 배를 모두 가져갈 수 있다. 그 밖의 혜택이 더 많다. 농장에서 캠핑하거나 주말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다. 캠핑장 외에 따로 숙박시설이 있어서 소모임 워크숍도 열 수 있다. 그때마다 이 대표는 직접 나와서 회원들을 돕는다. 이 대표는 배꽃이 피는 4월 말과 배를 따는 10월 초에 회원들을 모두 불러 파티를 연다.

“배나무를 기르고 배를 수확해 파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고 봤어요. 그래서 배나무를 분양해 사람들 각자의 스토리를 입힐 수 있도록 하고, 이 공간을 체험과 힐링의 장소로 진화시켰습니다.”


○ 감동 여문 배나무…충성고객 확보

어룡농원 배나무에 달린 이름표. 자녀의 이름을 넣거나 사랑을 약속하는 문구를 새기기도 한다.
어룡농원 배나무에 달린 이름표. 자녀의 이름을 넣거나 사랑을 약속하는 문구를 새기기도 한다.
회원 중에는 자기 나무에서 따는 배 외에 추가로 배를 사는 경우가 많다. “회원들이 농장에서 배나무를 직접 키우다 보니 이곳 배는 믿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그 덕분에 어룡농원이 수확하는 배의 30%는 직거래로 팔린다. 이 대표의 고객 관리는 세심하다. 그는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회원 및 고객과 소통한다. 그가 관리하는 SNS 종류만 10개다. 배의 판매가 부쩍 늘어나는 시기에만 반짝 SNS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다. 1년 내내 배 농장의 소소한 얘기들을 전하고 농장에서 어떻게 배나무를 가꾸고 있는지 알려준다.

그는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받을 때까지 세 번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배를 포장할 때 사진과 함께 한 번, 택배 차량에 실을 때 사진과 함께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잘 받았는지 확인하는 문자다. 자신이 주문한 상품의 배송 과정을 실시간으로 사진과 함께 확인한 고객은 감동을 받는다. 이 대표는 올해 초 한 고객으로부터 ‘이 서비스를 주문자뿐만 아니라 배를 선물로 받는 사람들에게도 보내주면 안 되느냐’는 건의를 받았다. 설날, 추석 같은 성수기 때 선물로 나가는 배는 약 1000상자로 받는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른다. 고민 끝에 이 대표는 건의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또 다른 고객이 되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귀찮고 힘든 일은 ‘블루 오션’, 왠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은 ‘레드 오션’이라는 것을….”


○ 끊임없는 연구가 핵심 전략


이 대표는 배나무 분양을 바탕으로 한 세심한 고객관리로 판로를 개척한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 직거래 콘테스트’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이 대표의 이런 아이디어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건설사 분양팀장으로 20년 가까이 일한 그는 2011년 말 회사를 관두고 귀농을 준비했다. 부친이 가꿔오던 배 농장을 물려받기로 했다. 하지만 안주하면 시장 환경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귀농을 준비하던 2011년부터 농업과 관련된 교육이라면 발 벗고 찾아다니며 들었다. 170만 원의 수강료를 낸 교육도 있었다. 그는 제주도 감귤 농장과 협업해 올해부터 배나무와 감귤나무를 함께 분양하는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그는 “농업에 ‘로또’는 없다”라고 단언한다. 귀농을 준비 중인 사람들은 막연히 밑천을 갖고 조금만 노력하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는 “한국의 농업기술은 상향 평준화돼 있다. 지원 체계도 잘돼 있어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산물 하나만 갖고는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가령 배 농장만 하더라도 배의 맛이 크게 뛰어나서 고객이 찾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보다 고객에게 감동을 줘서 제품을 신뢰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농업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요. 예전에는 누구도 물을 사먹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이제는 공기도 사서 마시는 시대예요. 그렇다면 ‘배나무 농장의 신선함을 담은 공기’ 같은 상품도 만들 수 있겠죠. 물론 그 상품에는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가 꼭 담겨야 합니다.”

천안=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배나무#어룡농원#주말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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