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스펙으로 이룬 日 원정취업… 청년드림 글로벌 챌린지의 현장

장원재 특파원 입력 2016-05-11 03:00수정 2016-09-2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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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희망이다/1부 글로벌 챌린지의 현장]<6> 日서 취업의 門을 활짝 열다
“한국 청년들 환영”… 스펙 안따지는 日은 ‘기회의 땅’
《 최근 저출산 고령화로 일손이 부족한 일본 기업들이 한국 인재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 젊은이들은 일본 젊은 세대보다 영어 실력이 뛰어나고, 경쟁에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문화가 비슷해 적응이 빠르고, 일본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해외근무를 마다하지 않는 적극성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인재를 찾는 일본 기업들이 늘면서 일본 취업이 한국 취업준비생들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무(無)스펙, 흙수저…. 주어진 조건에 굴하지 않고 한국인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일본에서 취업에 성공한 3명의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

 


일본 도쿄(東京)의 랜드마크인 미나토(港) 구 롯폰기힐스. ‘힐스족(族)’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일본 부유층들이 모인다는 곳이다. 이곳 모리타워 1층에서 지난달 17일 오남경 씨(24)를 만났다. 오 씨는 지난해 말 이 빌딩에 본사를 둔 정보기술(IT) 기업 ‘크루즈’에 입사해 패스트패션 전문 인터넷 쇼핑몰의 머천다이저(MD)로 일하고 있다.

○ ‘무(無)스펙’에서 취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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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씨는 1년 전만 해도 ‘무(無)스펙’이라는 말을 듣던 취업준비생이었다. 대학 졸업 직전이었지만 일본어를 빼면 이렇다 할 자격증도 없었다. 일본어와 국제통상을 전공한 오 씨는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취업하려면 스펙을 쌓는 것에만 2년은 더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때 우연히 만난 선배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선배는 “자원이 없는 일본이 발전한 것은 인재를 키워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일하면서 성장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조언했다. 선배의 말을 듣고 오 씨는 바로 일본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평소 동경했던 이 회사의 서류전형에 탈락했을 때 절망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무작정 찾아가 “설명회라도 듣게 해 달라”고 매달리자 회사에서 설명회에 참석하게 해주고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오 씨는 이후 과제 제출, 인턴, 임원면접 등을 거쳐 입사에 성공했다.

일본은 최근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기업들이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구인자 수를 구직자 수로 나눈 ‘유효구인배율’은 3월 기준 1.3으로 2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구직자 1명당 1.3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젊은 인재를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다 지친 기업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한국 청년들이 주목받는 것은 일본 청년들보다 영어 등 어학 실력이 뛰어나고 일본 문화에 쉽게 적응하기 때문이다. 이승희 KOTRA 일본지역본부 전략기획팀장은 “한국 대학생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입시와 취업난을 겪으며 적극성과 도전정신을 갖고 있다”며 “일본 기업들은 해외 근무를 기피하는 일본 학생을 대신해 해외시장의 최전선에서 뛸 한국인 인재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IT 업계에서는 “일단 한국에 가면 일정 수준 이상의 인재를 찾을 수 있다”는 상식이 자리를 잡았을 정도라고 한다.

일본 취업의 장점은 스펙 비중을 지나치게 많이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지쓰의 싱크탱크 후지쓰총연의 전지혜 컨설턴트(24)는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했다. 가난한 집안 형편 탓에 학창 시절 사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영어를 못하면 인생에서 실패한 것처럼 생각하는 학교 친구들을 보면서 평소 관심이 많았던 일본에서 활로를 찾기로 했다.

그는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힌 뒤 1년 학비가 1000만 원인 일본 대학으로 무작정 유학 왔다”고 했다. 장학금을 받아 학비를 해결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면서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 스펙이라고 내세울 만한 건 없었지만 4년 동안의 호텔 아르바이트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해 4월 글로벌 IT컨설팅 기업에 입사했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와 KOTRA가 지난해 일본 취업에 성공한 한국 청년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39명) 가운데 ‘스펙보다 가능성을 우선시한 채용’(13명)을 일본 취업 결심의 이유로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

최근 한국인 인재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지원 절차도 간단해졌다. 서류전형과 면접을 한국 채용박람회에서 진행하고 추가 절차는 인터넷 화상전화 ‘스카이프’로 진행하는 식이다. 최종 면접 등을 위해 일본에 올 때는 비행기표와 숙박비를 제공한다.

일본을 대표하는 굴지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에서 일하는 강소연 씨(30)는 한국에서 3차 면접까지 채용 절차를 모두 마쳤다. 서울의 명문 사립대 사범대를 나온 그는 한국 기업 취업박람회에서 ‘왜 선생님이 되지 않느냐’ ‘우리는 상경 계열을 선호한다’는 담당자들의 말에 회의를 갖게 됐다. 강 씨는 “일본 기업들은 과거에 뭘 했는지보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물었다”고 밝혔다.

○ “의지만 있으면 기회는 많다”


한국인 인재를 채용한 일본 기업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최근 한국 대학을 돌며 ‘일본 기업 취업 바로 보기’ 설명회를 진행한 딜로이트컨설팅재팬의 고쿠분 도시후미(國分俊史) 집행임원은 “한국의 인재들은 일본인 상사가 말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움직이면서 이해하고 결국 발전적인 해답을 찾아낸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오 씨는 3개월 만에 쇼핑몰에서 담당 브랜드 매출을 120% 올렸다. 그는 “한국 직원들은 경쟁을 통해 자신의 성과를 끌어올리는 것에 익숙하다. 올해 신인상을 탄 신입직원도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법인영업 4년 차인 강 씨는 “상대가 감동하도록 끈질기게 노력했고 지금은 고객들에게서 ‘무슨 일이 있으면 강 상(씨·일본어 존칭)에게 연락하겠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일본 회사에 취직한 한국인들의 만족도는 어떨까. 오 씨는 “입사 3개월 전부터 각종 연수를 받았고 지금도 수시로 교육을 받는다. 사람을 하나 키우기 위해 전력으로 지원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전 컨설턴트는 “에너지안보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데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비즈니스 매너 등에 이르기까지 교육을 받았다”며 “사람을 굉장히 잘 키워주는 것을 보고 ‘여기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업무 특성상 야근은 있지만 야근수당을 철저하게 챙겨주는 것은 물론이고 휴가 사용도 자유로운 편이다.

물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기업의 경우 조직문화가 보수적인 경우가 많고 조직의 화합을 중요하게 여기다 보니 튀지 않는 것을 선호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과 비교해 초기 급여도 낮은 편이다. 한 취업자는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일본식 문화 탓에 혼자만 분위기를 읽지 못해 당황한 때가 적지 않다. 인간관계도 끈끈하지 않아 외로움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취업에 성공한 이들은 “장기적으로 10년, 20년을 보고 도전하면 반드시 얻어갈 것이 있다”고 강조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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