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도 안쓰는 가계… 2015년 여윳돈 99조 사상최대

  • 동아일보

불투명한 경기 전망에 불안감… 소득 늘었지만 지갑 안열어
소비성향 2015년 71.9% 역대 최저… 소비위축→경기침체 악순환 우려

지난해 국내 가계의 여윳돈이 99조 원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 규모를 나타냈다. 불투명한 경기 전망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돈을 쓰지 않고 아껴 저축하는 가계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갑을 닫은 가계가 늘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경기침체의 악순환의 고리가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이 31일 발표한 ‘2015년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자금 잉여 규모는 99조2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5조7000억 원 증가했다. 이는 한은이 관련 통계를 재편한 2009년 이후 최대 규모다.

자금 잉여는 가계가 예금, 보험, 주식 투자 등으로 굴린 돈(자금 운용)에서 금융회사로부터 빌린 돈(자금 조달)을 뺀 것으로 가계의 여유자금 규모를 뜻한다. 지난해 가계 및 비영리단체 자금 운용액(226조9000억 원), 자금 조달액(127조6000억 원)은 각각 전년 대비 55조1000억 원, 49조3000억 원 늘어나 모두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다.

지난해 가계의 자금 잉여가 크게 늘어난 것은 가계가 벌어들인 만큼 소비하지 않고 쌓아둔 돈이 많아졌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은 관계자는 “자금 잉여가 많아진 것은 기본적으로 소득이 증가한 것에 비해 소비는 상대적으로 늘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원화 기준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093만5000원으로 전년(2956만5000원)보다 4.6% 증가했다. 국내 임금(피고용자 보수) 총액도 지난해 693조3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4.8% 늘었다.

하지만 가계는 늘어난 소득만큼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계의 가처분소득에서 소비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인 평균소비성향은 지난해 71.9%로 역대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대신 돈을 쓰지 않고 저축하는 가계가 늘면서 지난해 가계의 순저축률은 7.7%로 2000년(8.4%)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가계가 번 돈을 많이 쓰지 않고 은행 등에 쌓아놓은 것은 경기침체 장기화와 저성장에 따른 고용 불안,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후 불안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여기다 급증하는 가계부채에 대한 부담도 영향을 주고 있다.

자금순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부채 잔액은 1422조7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9.8%(126조6000억 원)나 급증했다. 이 수치에는 소규모 자영업자와 비영리단체가 포함돼 한은의 공식적인 가계부채 통계인 가계신용(지난해 말 1207조 원)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가계가 지갑을 닫고 있고, 이는 수요를 위축시켜 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이 된다”며 “정부는 성장률을 3%대로 끌어올리는 단기 부양책보다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미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가계#여윳돈#불투명#경기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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