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900’ 선봉에 세운 제네시스가 가야할 길은?

  • 동아경제
  • 입력 2015년 12월 31일 10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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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는 과연 치열한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현대차가 고급차와 고성능차를 준비 중이란 이야기는 10여 년 전부터 꾸준히 떠돌았다. 당시 구체적인 시기나 방법에 대한 얘기는 없었지만, 현대차는 비밀리에 사내 테스크포스(Task Force)를 만들고 시장 상황을 살피며 브랜드 출범시기를 저울질해왔다.

직접 관여한 임직원들만 알 정도로 조심스럽게 추진된 프리미엄 브랜드는 2013년 2세대 제네시스를 성공적으로 출시하면서 속도를 내게 된다. 특히 북미를 중심으로 제네시스가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면서 분위기는 차츰 무르익었다. 결국 에쿠스 후속 모델 출시를 1개월여 앞두고 현대차는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을 세상에 알렸다. 제네시스의 올해 런칭은 상반기에 결정됐지만, 어지간한 직원들조차도 발표 전날까지 모를 정도로 입단속을 철저히 했다.

오랜 산고 끝에 탄생한 제네시스 브랜드의 첫 번째 모델은 EQ900. 우선 초기반응은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화려하고 뜨겁다. 영업일 기준 12일 만에 사전계약 1만대를 돌파하고, 요즘도 하루 수백 대의 계약이 이뤄지는 상황이다. 값비싼 대형 세단이 초기부터 이렇게 불티나게(?) 팔리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이런 성공요인에 대해 김필수 대림대학 자동차학과 교수는 “EQ900의 디자인이나 품질이 세계 고급차들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 주효했다”며 “해외에서도 1~2세대 제네시스의 평가가 좋기 때문에 성공적인 안착이 점쳐진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장이 점점 고급차로 넘어가고 있어 현대차도 프리미엄 브랜드 없이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라며 “적당한 시기에 성공적으로 출범시켰으니, 이제는 꾸준한 품질관리와 AS 등으로 고객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글로벌 고급차 시장 어떻게 움직이나?

세계 고급차 시장은 금융위기로 크게 위축됐다가, 지난 2010년부터 연평균 판매 증가율(CAGR 기준) 10.5%를 기록하며 대중차 시장 증가율(6.0%)을 크게 웃돌고 있다.

판매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도요타와 폴크스바겐의 경우 전체 판매는 대중차 브랜드가 절대적으로 많지만, 최근의 판매 증가율은 고급차 브랜드가 월등히 앞선다.

지난 2013년 대비 2014년 렉서스는 9.0% 판매가 증가한 반면, 도요타는 2.4% 늘었다. 폴크스바겐도 고급차(아우디, 포르쉐, 벤틀리, 부가티, 람보르기니) 판매 증가율이 대중차(폴크스바겐, 스코다, 세아트) 판매 증가율을 3배 이상 앞질렀다.

최근 소비자들은 개인적인 만족과 경험을 중시하면서 업체에 점점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다. 남들과 비슷한 구매 형태에서 벗어나 보다 자신의 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제품과 경험에 대한 소비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품질과 안전성, 주행성능, 고급감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지는 등 점차 고급화되는 추세다.

#고급차 시장의 수익성과 움직임은?

고급차 시장은 대중차 시장 대비 수익성이 양호한 편이다. 글로벌 완성차 그룹 11곳의 지난해 실적을 분석한 결과 2곳의 고급차 기반 완성차 그룹(BMW·다임러)의 영업이익률은 평균 8.8%로 나타났다. 대중차와 고급차를 함께 판매하는 나머지 9개 완성차 그룹(GM·포드·도요타·혼다·닛산·폭스바겐·FCA·PSA·르노)의 영업이익률 평균은 3.9% 수준이다. 이를 근거로 완성차 업체들은 앞 다퉈 고급차 브랜드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인도 타타모터스는 2000년대 후반 재규어·랜드로버를, 중국 지리자동차가 볼보를 인수·합병(M&A)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독일과 미국, 일본 고급차 브랜드들은 고급차 시장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역량을 더욱 집중하고 있다.

#제네시스에 대한 해외시장 반응은?

현대차는 2세대 제네시스를 출시하면서 ‘세계 수준의 안전성과 첨단기술을 접목’을 공언했다. 이를 위해 설계 단계부터 제품을 차별화했다. 현대제철의 초고장력강 기술을 본격 적용한 ‘뼈대부터 다른’ 차로, 5대 기본성능(동력성능, 안전성, 승차감 및 핸들링, 정숙성, 내구성)과 새로운 디자인을 적용한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해 미국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 스몰 오버랩 충돌테스트에서 승용차 최초로 전 항목 만점을 받는 등 안전성을 입증했다. 또한 2014년 캐나다, 2015년 러시아 ‘올해의 차’에 선정되면서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에서는 2015년 잔존가치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덕분에 2세대는 1세대와 비교해 연간 최대 판매량이 20% 이상 증가하며 고급차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이는 현대차가 EQ900에 대해 희망을 걸고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미국시장만 놓고 본 제네시스

미국 시장은 세계 모든 자동차 시장의 최전방 격전지다. 특히 고급차 시장은 ‘미국에서 성공하면 세계에서도 성공한다’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압도적이다.

미국자동차딜러협회(NADA)에 따르면 제네시스(4도어)는 올해 미국 시장 미드 럭셔리(MID LUXURY) 차급에서 1~9월 누적 1만9146대가 팔렸다. 판매량 기준으로 벤츠 E클래스(3만5325대), BMW 5시리즈/M5(3만3838대)에 이어 3위 기록이다. 아우디 A6/S6(1만7072대), 렉서스 GS(1만6233대), 캐딜락 XTS(1만6023대), 테슬라 모델S(1만5150대), 캐딜락 CTS(1만4253대), 인피니티 Q70(6304대) 등에 앞서는 실적이다.

#제네시스 향후 출시 계획은?

현대차는 오는 2020년까지 총 6종에 이르는 모델을 출시해 1단계 제네시스 브랜드를 완성할 계획이다. 물론 6개 모델에 고성능 엔진을 얹거나, 디자인을 변형한 파생 모델을 접목시키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트림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제네시스는 브랜드 독립을 최종 목표로 독자적인 전략에 따라 움직인다. 기존 현대차와 차별화된 기술과 디자인을 입힌 럭셔리 중형세단을 오는 2017년 하반기에 내놓는데, 이 차는 후륜구동 고급차 전용 플랫폼과 섀시 등으로 차별화할 계획이다. 이후 대형 럭셔리 SUV, 고급스포츠형 쿠페, 중형 럭셔리 SUV 등을 차례로 출시할 계획이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제네시스 브랜드는 현대차의 또 다른 출발”이라며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내실을 쌓아 세계 고급차 시장에서 입지를 견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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