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쇼크까지… 수출 코리아 설상가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9일 03시 00분


국제유가 6년 10개월만에 최저

《 7일(현지 시간) 국제 유가가 2009년 2월 이후 최저수준으로 추락하면서 국내 유가도 함께 떨어져 조만간 L당 1200원대 주유소가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8일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의 보통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1.42원 내린 L당 1448.76원으로 집계됐다. 주유소 휘발유 값이 1450원 밑으로 떨어진 것은 2월 17일(1448.15원) 이후 10개월 만이다. 저유가가 장기화되면서 소비자는 혜택을 받지만 한국 경제는 심각한 내상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국제유가가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찾지 못하면서 ‘유가 30달러 시대’가 고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고 있다. 저유가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신흥국 경제가 악화되고 한국 주력 산업의 수출 가격이 하락해 무역 규모가 줄어드는 등 한국 경제가 ‘저유가 쇼크’를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7일(현지 시간)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2월 이후 6년 10개월 만에 최저치인 37.65달러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말 100달러 선과 비교하면 1년 만에 40%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한국이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도 지난달 30일 30달러대로 내려앉은 이후 38달러 선에 머무르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은 4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감산 합의에 실패하면서 공급 과잉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다음 회의가 열리는 내년 6월까지는 현재 생산량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 원자재 수입국인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경기 둔화로 원유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이어서 저유가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제유가가 20달러 선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원유 공급 과잉으로 내년에 유가가 배럴당 최저 20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 원유 매장량 4위인 이란도 내년부터 서방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나 대규모 원유 수출을 앞두고 있어 유가 하락을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평균 원유 생산원가가 배럴당 27달러 안팎”이라며 “산유국들의 ‘치킨게임’으로 이 정도까지 국제유가가 하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국제유가가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국내 기름값도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L당 1800원대까지 올랐던 보통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10월 1400원대 중반까지 떨어져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8일 현재 1448.76원이다. 8일 충북 음성군의 한 주유소는 휘발유 가격을 L당 1295원, 충남 보령시의 한 주유소는 경유를 L당 1050원까지 내려 조만간 1200원대 주유소가 속속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 30달러 시대가 고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한국 경제의 먹구름도 짙어지고 있다. 과거 저유가는 원유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한국 경제에 ‘호재’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산유국의 국가부도 위험이 높아지고 세계 경제의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압력이 커지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올해 들어 수출이 11개월째 감소한 데는 저유가의 영향이 컸다. 유가와 매출이 연동되는 석유화학 수출 단가가 떨어지고 저유가로 산유국 조선·건설·철강 수요가 감소해 관련 업종 수출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저유가 흐름이 지속되면 내년에도 한국의 성장률이 올해에 이어 2%대에 머물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미 정유 화학 조선 건설 등 유가와 매출이 연동된 산업은 부진의 늪에 빠져 있다. 지난달 석유제품 수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6% 급감했고 석유화학제품 수출도 24% 줄었다. 산유국 발주처들이 저유가로 인해 발주 물량을 축소하거나 연기하면서 해외 건설도 타격을 입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12월 현재 해외 건설 수주액은 약 409억57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95억6000만 달러에 비해 31.3% 감소했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산유국들이 해외에 투자했던 ‘오일머니’ 회수에 속도를 내면서 중동계 자금이 빠르게 이탈하고 있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내년에는 세계경기 회복과 국제유가 내림세가 진정돼 무역환경이 올해보다 낫겠지만 미국 금리인상 여파, 신흥국 성장세 둔화 등 하방 리스크 역시 만만찮다”며 “소재·부품 고부가가치화와 소비재 산업 육성, 비효율사업 정리와 기업 체질 개선 등으로 우리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redfoot@donga.com·정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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