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지방경기… “조선 화학 철강으로 먹고사는 곳 더 심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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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경제 전국 商議회장 60명 설문]

이순선 용인상공회의소 회장(여)은 주방용품 기업인 성창베네피나를 경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13년의 경제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품 90%를 일본으로 수출하는데 2012년 말부터 엔화 가치가 급격히 떨어진 게 문제였다. 엔화로 받은 수출 대금을 원화로 바꿨더니 매출액이 거의 반토막 난 것이다.

지난달 22일 경북 경주에서 본보 기자와 만난 이 회장은 “매출 200억 원짜리 회사인데 2013년에만 50억 원 적자를 냈다. 그러자 은행에서 ‘대출금 갚으라’는 연락이 왔다. 건물을 팔아 은행 빚부터 갚은 덕분에 겨우 죽지 않고 살아남았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기가 너무 안 좋다. 모든 빚을 갚으려면 앞으로도 2, 3년은 더 고생해야 될 거 같다”고 말했다.

전국 상공인들이 불경기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경주에서 열린 전국 상의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지방 상의 회장 60여 명은 예외 없이 “기업하기 너무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돌파구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똑 부러진 대답을 한 상의 회장은 한 명도 없었다.

상의는 전국 71곳에 위치해 있다.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등 7곳, 경기도 22곳, 경상도 19곳, 전라도 8곳, 충청도 7곳, 강원도 7곳, 제주도 1곳이 분포해 있다.

○ 대기업에 좌우되는 지방 경기

지방 상공인들의 경기는 대기업의 경영 상황과 연동돼 있다는 특징을 보였다. 경남 통영시에 있는 조선소에 산업용 가스를 공급하는 그린산업가스의 회장 겸 통영상의 회장인 이상근 씨는 “조선 경기가 안 좋으면 직격탄을 맞는다. 지난해 매출액이 20∼30%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통영의 상공인들은 대부분 조선소와 수산물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데 요즘 조선 경기가 안 좋아 회원사들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상의 윤광수 회장에게 ‘경기가 어떠냐’고 물으니 대뜸 포스코 걱정부터 했다. 그는 “700개 회원사 중 철강 계통이 90%이고, 이들은 대부분 포스코에 납품한다. 그런데 포스코가 중국산 저가 철강에 고전하고 있고 올해 검찰 조사까지 받으면서 포항 경기가 죽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스코가 살아야 포항이 산다. 포항 상공인들이 나서 포스코가 추진 중인 화력발전설비를 만들 수 있도록 규제 완화를 해 달라고 서명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포항은 청정지역이어서 원칙적으로 화력발전소를 지을 수 없다.

지방 중소상공인들이 대기업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상의 회장 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이들은 현 경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21.7%)을 꼽았다.

○ 근본적 문제는 ‘만성적 저성장’

인천상의 이강신 회장은 “올해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줬는데 제대로 소비를 하지 않더라”며 “앞으로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보고 벌써부터 지출을 줄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북부상의 최상곤 회장은 “요즘은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강한 외부 충격이 없어도 힘들다”며 “섬유업체의 중국 이전과 수출 부진이 겹치면서 만성적으로 경기가 나쁘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국 경제는 1990년대 외환위기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4% 이상 고속성장을 했다. 하지만 2012년과 2013년 2%대까지 추락했고 올해와 내년도 2%대 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달 29일 올해 성장률을 애초 2.7%에서 2.4%로 하향 조정하고, 내년 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한국이 본격적인 저성장 기조에 들어서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용 유연성을 높여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인천상의 이 회장은 대형 선박에서 컨테이너를 내리는 하역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인력이 많이 필요해 직원을 160여 명 두고 있다. 그는 “문제가 있는 직원은 재배치와 같은 기회를 한 번 주고, 그러고 나서도 개선되지 않으면 해고할 수 있도록 고용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은 “지방 상의 중 조선, 철강, 화학 분야와 관련성이 높은 곳이 특히 체감 경기가 나쁘다”며 “하지만 상공인들도 성장을 위한 투자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 미래 먹거리 개발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주=박형준 lovesong@donga.com / 황태호 기자
#지방경기#조선#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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