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씩 올빼미 근무… “그래도 해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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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알바’로 청년에게 희망을]<상>알바의 덫에 갇힌 청년들

5일 밤 서울 동대문구의 한 PC방에서 일하던 신모 씨가 손님이 먹고 남긴 라면을 치우고 있다. 신 씨는 “매일 밤낮이 뒤바뀌어 힘들지만 미래를 위해 견디고 있다”며 청소를 계속했다. 이동재 기자 move@donga.com
5일 밤 서울 동대문구의 한 PC방에서 일하던 신모 씨가 손님이 먹고 남긴 라면을 치우고 있다. 신 씨는 “매일 밤낮이 뒤바뀌어 힘들지만 미래를 위해 견디고 있다”며 청소를 계속했다. 이동재 기자 move@donga.com
5일 오후 11시 서울 동대문구의 한 PC방. 이곳은 게임을 즐기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컴퓨터 스피커에서 내뿜는 각종 게임 효과음과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에 손님들이 떠드는 목소리까지 뒤섞여 번잡했다. 조명은 밝았지만 늘 창문을 닫아 두는 통에 내부 공기는 후텁지근하고 탁했다.

신모 씨(22)는 이곳에서 월∼목요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일한다. 요금 계산에 자리 안내, 화장실과 흡연실 청소, 손님 라면 끓여 주기까지 모두 그가 혼자 해야 하는 일이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돈은 시간당 6000원. 낮 알바보다 500원 많다.

○ 저임금에 찌든 올빼미 야간 알바

PC방, 편의점, 당구장…. 우리 주위에는 이처럼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널려 있다. 고객은 원하면 어느 때든 찾을 수 있어 편리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언제나 대기 상태여야만 한다.

이들의 근무 여건은 생각보다 열악하다. 하지만 꿈을 위해 불편을 감수한다. 신 씨도 한식과 일식,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는 데 필요한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야간 알바를 선택했다. 그는 “식당에서는 단순한 주방보조를 제외하곤 경력이나 자격증 없는 사람을 뽑지 않는 편”이라며 “딱 3개월만 더 일해 학원비 1000만 원을 채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인천 부평구의 주유소에서 일하는 강모 씨(25)도 마찬가지다. 그는 낮에는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밤이면 이곳에서 주유원으로 일한다. 그가 매일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꼬박 12시간을 일하고 받는 한달 월급은 190만 원가량. 다른 알바보다는 비교적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달에 단 세 번 쉬는 것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강 씨는 “편의점이나 PC방, 술집을 가리지 않고 일해 봤는데 이곳처럼 근로계약서를 쓴 곳은 드문 데다 다른 곳에선 일이 없으면 근무시간 도중에도 퇴근하라는 ‘꺾기’가 비일비재했다”며 “그런 곳에 비하면 이곳은 임금도 제때 줘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 어리다고 임금 체불, 폭행도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18세 청소년이 상담을 요청해 왔어요. 들어 보니 1분 지각할 때마다 사장한테 당구 큐로 한 대씩 맞는다고 하더군요.”

1일 국회에서 열린 ‘아르바이트 실태 보고 및 권리 찾기 토론회’에서 나온 피해 사례 중 일부다. 이처럼 적지 않은 아르바이트생들이 폭언과 임금 체불 등 열악한 근무 조건에 신음하고 있다. 청년인권단체 ‘청년유니온’이 지난해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노동 상담 유형을 보면 임금체불이 14.2%로 가장 많았다. ‘첫 월급에서 30만 원은 보증금’이라며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면 마지막 월급은 없다’는 식이 대표적이다.

10대 청소년의 대우는 더 취약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아르바이트 실태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비율은 25.5%에 불과했다. 특히 중학생은 13%만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안선영 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어릴수록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등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설명했다.

○ 돈 때문에 불법에 빠지기도

일부는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 때문에 합법과 불법을 넘나드는 아르바이트를 선택하기도 한다. 취업 준비생인 황모 씨(26)는 올 2월까지 석 달 동안 경기 고양시의 한 안마방에서 일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호텔 카운터를 볼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찾아가 봤더니 성매매가 결합된 안마방이었다”며 “시급 7000원에 적지 않은 팁도 받았지만 마치 내가 포주가 된 것 같은 찝찝한 마음이 들어 그만뒀다”고 말했다.

여성에게는 이런 어두운 아르바이트의 유혹이 더 강렬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에서 일하는 정모 씨(21·여)는 “유흥업소에 나가 돈을 많이 벌어 가방 사는 친구를 보면서 부럽기도 했지만 한번 발을 담그면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아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 알바생들의 하소연

손님들이 다짜고짜 반말부터 하면 마음이 상해요. ‘무조건 사장 나오라고 해’ 같은 말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주유소 주유원 25세 강모 씨)

큰돈을 받지만 실험을 할 때마다 몸이 망가지는 것 같아요. 학비 걱정만 없다면 더는 하기 싫어요. (생동성실험 아르바이트 경험자 28세 강모 씨)

새벽에 출근하는 이들을 볼 때면 난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빨리 취업이됐으면좋겠어요. (안마방 아르바이트생 26세 황모 씨)

박창규 kyu@donga.com·김도형·이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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