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그룹마저… “2014년만큼 뽑기도 힘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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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채용시장]

《 “아마 늘리지는 못할 겁니다. 필요하면 어느 정도 줄일 수도 있고요.”(삼성그룹 고위 관계자)

“그룹 전체 채용 규모는 설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겁니다. 분위기상 지난해보다 늘리긴 힘들다고 봅니다.”(SK그룹 고위 관계자)

27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국내 4대 그룹도 채용 규모를 전년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줄일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환율 불안과 유가 하락, 내수 침체 등 대내외적 악재가 한꺼번에 겹쳤기 때문이다. 》

○ 대기업 채용 계획은 ‘오리무중’

삼성그룹은 2013년 대졸 신입사원 90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끝으로 그룹 차원의 채용 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업종별 경기 변동이 큰 상황에서 목표를 채우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다는 점에서다. 삼성그룹은 올해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탈레스 등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할 예정이어서 전체 채용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 이슈도 안고 있다. 삼성증권과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도 채용을 늘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2013년과 지난해 각각 8520명과 8740명을 채용했다. 이 가운데 대졸 신입사원은 6660명과 6800명이었다. 현대차그룹은 “경영환경 악화에도 지난해 수준으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대내외 여건이 녹록지 않다.

LG그룹 역시 마찬가지다. LG그룹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채용 계획을 짜고 있지만 아직 그룹 차원에서 집계한 것은 없다”면서도 “투자나 채용 계획에 힘겨워진 경영환경을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SK그룹과 CJ그룹은 오너 부재가 채용 계획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SK그룹의 경우 지난해 37년 만에 처음 적자를 낸 SK이노베이션에 대한 구조조정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경영 계획에서 채용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지난해 초 대졸 신입사원 15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던 CJ그룹은 올해는 아직 채용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재판 중인 이재현 회장이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그룹의 주요 투자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 탓이다.

○ 대내외 악재 속 ‘고용 절벽’ 우려도

이날 대한상의가 발표한 500대 기업 채용 계획을 보면 매출액 순위 기준 100대 기업 중 채용 계획을 확정한 38개사는 올해 1만6564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전년도 1만7094명보다 530명(3.1%) 줄어든 것이다. 대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 규모를 조금만 줄여도 전체 채용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크다.

2010년 8.0%에서 2012년 7.5%까지 낮아지던 청년실업률은 2013년 8.0%, 지난해 9.0%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날 전국 상의회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특히 새로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들에 대한 고용을 늘려 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상위 100대 대기업이 500대 기업 전체 채용 인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2.5%에 이르는 만큼 이들 기업의 채용 확대 여부가 올해 대졸 공채 시장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으로서는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 채용을 무조건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LS그룹 관계자는 “전선 등 그룹 주요 업종 특성상 불황의 영향을 가장 늦게 받지만 지난해부터 경영 환경이 어려워졌다”며 “올해도 사정이 나아지긴 어려울 것으로 보여 채용을 늘리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수시채용만 진행할 해운업체 H사 관계자는 “해운업계 불황이 오래되다 보니 다른 회사들처럼 연간 단위로 채용 인원을 정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업종별로 채용 전망이 가장 어두운 곳은 정유·화학과 식음료업계다. 이들 업계에 속한 기업들이 올해 뽑겠다고 밝힌 인원은 지난해 목표와 비교할 때 각각 13.2%와 12.8%나 적다. 지난해 신입사원을 100여 명 선발한 남양유업 측은 “올해 채용 규모를 늘리긴 힘들고 아예 10∼20% 줄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시행될 정년연장법으로 ‘고용 절벽’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12월 조사한 결과 기업들은 신규 채용 규모를 정할 때 ‘적정 인원’(48.0%), ‘대내외 경제여건’(26.0%), ‘총인건비’(20.2%) 순으로 고려한다고 답했다. 국내 100인 이상 기업 중 임금피크제 도입 비율이 지난해 기준 9.9%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업들이 정년 연장 부담 때문에 당분간 신입사원 채용에는 소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 금융권과 중소기업도 흐림

증권사들의 채용 기상도는 올해도 ‘흐림’이다. 지난해 구조조정으로 3000명이 넘는 인력이 증권가를 떠났지만 신규 채용 규모는 300명 수준에 그쳤다. 올해도 대부분의 증권사가 신규 채용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대신증권과 HMC투자증권은 2013년부터 대졸 신입 공채를 실시하지 않고 있다. 올해도 아직 채용여부를 확정짓지 못했다. 대신증권 관계자는 “2년 전부터 이어진 인력 감축 탓에 신규 채용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신한금융투자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대우증권도 올해 신규 채용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중소기업도 저성장 추세에 투자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인력부족률이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존에 알려진 바와 달리 구직자가 없어 일자리가 남아도는 ‘인력 미스매치’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중소기업청이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중소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9000개의 중소 제조업체에서 인력부족률은 1.48%로 사상 처음 1%대로 낮아졌다. 2002년 9.36%였던 인력부족률은 2007년 3.93%, 2012년 3.03%로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산업부·경제부·소비자경제부 종합
#채용#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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